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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편의점에도 팔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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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몇 년 전까지는 이것 알면 요즘 사람, 모르면 옛날 사람 하는 투의 테스트가 보이면 꼬박꼬박 해 보고, 70 점 정도 이상이 나오는 것을 보고서야 안심하곤 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슬그머니 그런 테스트가 눈에 띄어도 피해가게 되었다.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혹은 거래처의 나보다 한참 나이가 어린 담당자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하는 말이 나오면 눈치로 대충 얼버무리고, 나중에 그 단어를 검색해 보고 새로 배운 영어 단어를 암기해 두듯 기억해 놓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나도 별 수 없이 나이가 드는 모양이다.


그러던 중에 알게 된 한 아이스크림 브랜드가 있다. 이것도 처음에는 아이스크림 가게 이름인 줄을 모르고, 무슨 내가 모르는 요즘 새로 나온 아이돌 이름인가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야 몇 년 전부터 한참 유행하던 탕후루가 한 물 가고 그 자리에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는 한 요거트 아이스크림 체인 브랜드의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 아이스크림은 일단 비쌌다. 그리고 비싼 게 문제가 아니라 모르는 사람은 눈치 보여서 사 먹기 꺼려진다는 어느 샌드위치 체인점만큼이나 토핑의 종류가 많고 복잡해서 나 같은 사람은 한번 먹어보고 싶어도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에 거래처 담당자님이 집 근처 한 편의짐 이용권을 하나 보내주셨다. 요즘 유행인 그 아이스크림 아시죠. 그거 그 편의점에서 제휴상품으로 팔고 있는 모양이더라고요. 가게 가서 사 먹는 진퉁만은 못한데, 그래도 꽤 괜찮으니 덥고 입맛 없을 때 한 번 드셔보시라는 친절한 어드바이스도 있었다. 그래서 점심을 먹고, 한참 뙤약볕이 내리쬐는 오후 2시에 늘 가던 편의점을 벗어나 한 블럭 정도 떨어진 다른 편의점에 갔다. 우리 동네는, 언젠가 한 번 쓴 것 같지만 우리 집 기준 사방 세 블럭 정도 안에 어지간한 브랜드의 편의점은 다 모여있기 때문에 이럴 때는 아주 편리하긴 하다.


조그만 컵에 든 파르페 아이스크림이 3천5백 원이니, 그리 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긴 했다. 이름답게 요거트 아이스크림 베이스에 꿀을 얹고 동글동글한 초코볼이 토핑으로 얹혀진 간단한 구성의 아이스크림이었다. 아이스크림은, 뭐 맛있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 만큼의 맛인가 하는 생각은 솔직히 들었다. 물론 내가 먹은 건 업장에서 파는 그 맛이 아니라 대량생산의 프로세스를 거치면서 디테일한 부분이 아주 많이 생략된 간소회된 버전이라 그런 탓도 있겠고 아이스크림이라는 걸 너무 오랜만에 먹어본 내 입맛이 무뎌진 탓이기도 할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이제 어디 가서 그 아이스크림 이야기가 나오면 최소한 아는 척은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데 의의를 두기로 한다.


파인트니 쿼터니 하는 말을 들은 지도 아주 오래전의 일처럼 느껴진다. 그가 있을 때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서 세 가지 맛, 혹은 네 가지 맛 아이스크림을 골라 남아와서는 새벽에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나란히 한 숟갈씩 퍼먹곤 했었다. 그리고 다른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나는 이제 더 이상 나 혼자 먹기 위해 담아서 파는 아이스크림을 사지 않게 되었다. 그 가게에서 파는 아이스크림 중에 두세 가지 정도는 꽤 좋아했었는데도. 많은 것들이 그가 떠남과 동시에 내 인생에서 지워졌다. 일부러 청승을 떨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남은 내 인생은 내내 디테일이 많이 생략되어버린 간소화 버전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가게에 직접 가서 사 먹는 것만큼 맛있을 수는 없는, 편의점 제휴상품으로 나온 그 아이스크림처럼.


201707271131900835_1.jpg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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