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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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9월 들면서 놀랄 만큼 쾌적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며칠 내로 선풍기는 조금 이를지 몰라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직 차워버리지 않은 에어컨 리모컨 정도는 건전지를 빼고 다시 서랍장 같은 곳에 넣어버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 그런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놀라운 건 그거다. 아이고 날이 이제야 좀 살만해졌다고, 1년 내내 이런 날씨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핸드폰의 날씨 어플을 켜 보면 의외로 기온 자체는 그리 낮지만은 않아서 보통 29도에서 30도, 가끔은 31도 정도까지 올라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집에서 내다보기만 하는 것과는 달리 아직도 밖을 나서면 꽤 더운 날씨이기도 하다. 이 정도면 객관적으로는 '아직은 여름 날씨'인 것이 맞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올여름 정말 다 지나간 듯이, 1년 내내 이 정도의 날씨이기만 하다면 무슨 불만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놓고 스스로 이럴 일인가 싶어질 때가 있다. 아마도 습도가 낮아진 탓일 것이다. 살이 쩍쩍 올라붙던 습도가 거짓말처럼 낮아져 버린 탓인지 요즘의 날씨는 선선하다고만은 볼 수 없는 기온에 비해 산뜻하다는 기분까지 들 정도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자리에 누워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선들선들 들어오는 바람은 꽤 선선하고 그를 따라 들려오는 풀벌레 우는 소리는 제법 운치 있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런 걸 보면 지난여름 내내 사람을 볶아댄 것은 34, 5를 육박하던 그 기온 탓도 있겠지만 그 습도가 제일 문제이긴 했던 모양이다.


넉넉히 이번달 말까지는 더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이라면 정말 추석이 지나고부터 훌쩍 서늘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에는 언제나 가속이 붙는다. 한 해가 흘러가는 속도도 비슷하다. 연초에는 그럭저럭 조금쯤 꾸물거려도 괜찮을 것 같던 시간은 봄이 지나고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슬슬 속도를 내기 시작해서 아 올여름 다 갔구나 하는 순간에서는 눈만 몇 번 깜빡거리다 보면 어느새 크리스마스니 연말연시니 하며 사방이 시끄러운 순간까지 무슨 텔레포트라도 한 듯 훌쩍 건너뛰어 있다. 그건 지금까지 40년 넘는 평생 내내 그랬고, 지금처럼 시간이 빨리 가지 않던 10대 20대 때도 느끼던 것이니 40대 중반을 넘은 지금은 더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아이고 날 선선해서 좋구나 하는 말을 하다가, 제 풀에 서너 단계쯤을 알아서 건너뛰고 올해도 다 갔구나 하는 말과 함께 꺼질 듯한 한숨을 한 번 내쉬어 본다.


시간은 이렇게 꾸역꾸역 잘도 가고, 나는 그렇게 단 하루도 버겁던 시간을 어찌어찌 살아내 가고 있다. 문득 생각이 나 날짜를 세어보니 그가 내 곁을 떠나간 지도 어영부영 882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대충 넉 달 정도 후면 천 일이 되는 셈이다. 길다면 꽤 긴 시간이 흘러갔는데도 나는 아직도 모든 숫자와 날짜를 대할 때마다 이렇게 먹먹해지다가 기어이 슬퍼지고 만다. 이거 어떡할 거냐고 좀 따지기라도 하고 싶다. 그래야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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