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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이나 배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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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외출하기 전에는 반드시 편의점에 들러서 정류장까지 가는 동안 마실 커피를 하나 사고 카드 잔액을 확인한다. 대충 쓸 만큼이 남아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충전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그놈의 만 원짜리 한 장 출금하는 일이 여간 번거롭지 않다. 편의점 ATM기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지폐부족' 메시지를 띄워놓고 바쁜 사람의 사정 따위는 나 몰라라 한다. 가끔은 스크린 터치가 제대로 먹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에 화면이 처음으로 되돌아가버리는 일도 있다. 요즘은 좀 익숙해져서, 저럴 때는 그냥 핸드백 속에 든 휴지를 꺼내 스크린에 묻은 먼지를 한번 슬쩍 닦아주면 해결된다는 사실을 터득했긴 하다.


직선으로 가면 2, 30분이면 갈 거리를 버스 노선이 세월아 네월아 돌아가게 짜져 있어 한 시간 가까이를 들여야만 갈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중간에 내려서 갈아타면 물론 되긴 하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려서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과, 그렇게 갈아탄 버스에 앉을자리가 있을 것인가 하는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그냥 집에서 30분 일찍 나가서 한 번 타고 끝까지 가고 만다는 귀차니스트다운 사고가 어김없이 발동하게 된다. 이래서 결국 오며 가며 한 시간이면 충분할 거리를 도합 두 시간을 들여 오가게 된다.


가끔 거래처 사람에게 급한 카톡을 보내놓고 빨리 연락이 오지 않아 이제나 저제나 발만 동동 구르며 핸드폰 액정만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을 때가 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다 보면 대개 오는 카톡의 내용이 '지금 운전 중이라 확인한 후 연락드릴게요' 하는 말이다. 거 참,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빨리 연락을 못한 핑계 내지 변명 내지 구실로는 상당히 있음직한 동시에 간지 나는 답변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운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동네방네 다 소문이 나 있는 나로서는 죽어도 써먹을 수 없는 핑계라는 사실이 조금 배 아프기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는 내게 운전 배울 것을 꽤 자주 종용했었다. 어차피 면허 따봐야 당신이 내가 운전하는 차 타기나 하겠냐고, 돈 들여 따봤자 장롱면허 못 면할 거 안 따겠다고 말하면 그는 정색을 하며 운전을 할 줄 알지만 안 하는 것과 할 줄 몰라서 못 하는 것은 천지 차이라고 했다. 일단 따기만 하면 내가 도로 연수 기가 막히게 잘 시켜줄 수 있다는 그의 말에도 나는 온갖 핑계를 다 대가며 기어이 면허를 따지 않았다. 물론, 내 옆에서 천년만년 운전기사 노릇을 해 줄 사람이 있는 줄 알고 그랬지만.


어제는 잠시 나갔다 온다고 나섰던 길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길어져 저녁 여덟 시도 넘어서야 집에 왔다. 생전 처음 타보는 버스의 노선도에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아 나도 면허나 따둘걸 하는 때늦은 후회를 한다. 이젠 어찌어찌 면허는 딴대도 도로연수는 누구더라 해 달라고 하나. 그냥, 따라고 할 때 못 이기는 척 따놓기나 할걸. 그런 때늦은 후회를 한다.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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