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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이 너무 이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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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그날그날의 점심 메뉴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나는 보통 열한 시 반쯤이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 밥 먹을 채비를 시작하는 편이다. 물론 라면 등 조리가 간단한 음식인 경우엔 좀 더 하던 일을 할 때도 있고, 며칠 먹을 찌개나 카레를 끓일 때는 재료 준비부터 시작해서 좀 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11시 20분쯤부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대충 평균치가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게 30분쯤 걸려서 밥 먹을 준비를 하고 12시쯤이 되면 밥을 먹는다. 틀어놓은 텔레비전을 본다든지, 잠깐 핸드폰을 들여다본다든지, 도대체 나 혼자 밥 먹은 이 알량한 설거지가 왜 이렇게 귀찮을까 하는 해도 안 해도 그만인 생각을 하느라 잠깐 미적거리다가 12시 30분쯤엔 결국 무거운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밥 먹은 것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내 점심 식사는 준비부터 설거지까지를 다 따지면 꼭 한 시간 반쯤이 걸리는 셈이다.


그렇게 한 시 이전에 밥을 다 먹고, 정작 내가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빠르면 새벽 한 시, 늦으면 두 시나 두시 반까지도 간다. 얼추 열두 시간 이상의 공복 시간이 있는 셈이다. 물론 그 12시간 남짓을 생짜로 굶진 않고, 떠먹는 요거트라든가 이런저런 간식거리를 더러더러 먹긴 한다. 그러나 이래서야 자꾸만 오후 6, 7시쯤에 뭔가를 먹고 싶어지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좀 하고 있던 참이었다.


어제는 오전에 하던 일의 내용이 중간에 끊기가 조금 애매해서, 에라 그냥 하던 것까지만 하고 점심을 좀 늦게 먹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그게 좀 잘못된 생각이었던지 하면 할수록 점점 더 털고 일어나기가 어려운 내용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적당히 해놓고 끊으려던 일은 그냥 오늘 할 분량까지가 전부 다 끝나버리고 말았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때부터 그다지 고픈 줄도 모르던 배가 급속도로 고파지기 시작했다. 나는 허둥지둥 주방으로 튀어나가 라면을 끓여 왔다. 끓여 온 라면을 다 먹고, 국물에 밥을 말아서 한 그릇 먹은 데까지 걸린 시간이 한 10분은 걸렸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불과 15분 남짓 만에 나는 때늦은 점심식사를 해치웠다.


설거지를 하는 내내 점심 먹는 시간이 너무 이른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오후 3시는 좀 무리가 있다지만 한 시간 정도 늦게 먹는 건 뭐 나쁘지 않을 것도 같은데. 그러면 오후에 괜한 출출함에 시달리다가 뭐라고 먹는 일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내일부터는 일부러 점심을 조금 늦게 먹어볼까.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한 것이 무색하게도 나는 또 저녁 여덟 시가 조금 못 된 시간 느닷없이 닥쳐오는 출출함을 견디지 못하고 편의점으로 내려가 두툼한 계란이 든 타마고 산도 한 팩을 사 와서는 아주 맛있게 먹어 치웠다. 사람이 허기를 느끼는 건 정말로 배가 고파서 그런 것도 있지만 외로움이나 스트레스 등 때문에 느끼는 가짜 허기도 있다는데 나는 아마도 후자에 해당하는 모양이며, 그런 거라면 점심을 열두 시에 먹으나 한 시에 먹으나 결국은 똑같겠다는 다소 맥 빠지는 결론만이 내려졌다. 누굴 탓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평생 옆에서 같이 밥 먹어줄 것처럼 해놓고 도망간 사람이 나쁠 뿐이다. 정말이다.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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