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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봉안당에 꽤 자주 가는 편이었지만 요즘 일 때문에 그 근처를 자꾸 가게 돼서,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간다는 기분으로 꽤 자주 봉안당에 들르고 있다. 앞으로도 한 달 정도는 더 그래야 할 듯도 싶다. 아, 귀찮으니 이젠 좀 그만 오라고 할 듯도 싶다.
그가 잠들어있는 봉안당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구릉을 한참이나 걸어 내려와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야 한다. 왕복 4차선이니 합이 8차선인 꽤 큰 도로가 나 있는 사이를 가로지르는 횡단보도다. 이 도로는 꽤 넓고 큰 도로여서 건축용 자재를 실은 커다란 트럭들이 신호에 맞춰 곡예에 가까운 U턴을 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자연히 그 도로를 가로지르는 횡단보도의 길이 역시도 만만치 않게 길다.
문제는 이 횡단보도의 보행 시간이 상당히 촉박하다는 것이다. 파란 불이 바뀌었을 때부터 걷기 시작하면 중앙선 무렵에 왔을 때 남은 초수가 표시되기 시작하고, 맞은편 인도에 도착하면 아슬아슬하게 1, 2초 정도가 겨우 남는다. 이만하면 아직 젊은 데다 특별히 걸음이 느리거나 불편하지 않은 나조차도 핸드폰에 한눈을 팔고 있다가 신호가 바뀐 걸 늦게 깨달았다 하면 전력질주하듯 뛰어야 겨우 파란 불이 바뀌기 전에 맞은편에 안착할 수 있다. 도로가 이렇게 넓고 차가 이렇게 많이 다니는데 횡단보도 건너는 시간을 왜 이렇게 박하게 주는지, 그의 봉안당을 오갈 때마다 잊지 않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임박한 추석을 맞아 봉안당에 모셔진 모든 분들 앞에 헌화대가 설치되었다. 그의 경우는 내가 꽤 뻔질나게 드나드는 바람에 상시로 헌화대가 걸려 있긴 하지만. 헌화대 위에 새 꽃을 놓고, 아 진짜 사는 거 피곤하고 힘들고 무서워 죽겠다는 푸념을 한참이나 늘어놓았다. 이것 끝나면 저것, 저것 끝나면 그것, 그것 끝나면 다시 이것 하는 식으로, 무슨 해결해야 할 일들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어서 힘들어 죽겠다고, 혼자서만 잘 먹고 잘 살지 말고 나 좀 도와줘 보라는 생떼를 한참이나 썼다. 그래놓고 언제나처럼 구릉을 내려와, 아직은 젊은 내 걸음으로도 아슬아슬하게 겨우 건널 수 있는 횡단보도를 건넜다. 거 참,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언젠가는 신호 한 번에 이 횡단보도를 다 건너지 못할지도 모르지 않겠나. 그런 생각을 하니 좀 앞이 막막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건강해야지. 뭘 하든 건강해야지. 사는 건 여전히 쉽지 않고, 어느 지나간 노래 가사대로 '이 카드로 저 카드 막는' 나날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건강해야지. 최소한 이 횡단보도를 신호 한 번에 다 건너지 못해서 중앙선에 우두커니 멈춰 선 채 다음 신호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그런 노년만은 맞지 않아야 할 텐데. 오늘도 맞은편 인도에 올라서자마자 빨간 불로 야멸치게 바뀌는 신호등을 보면서,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