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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은 아침 일찍 볼일이 있어서, 정말로 오랜만에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할 일을 마치고 집에서 일곱 시에 나갔다. 그리고 볼일을 다 보고 집에 돌아온 것이 오후 한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간만에 아침 일찍 일어나 여기저기 발품을 팔고 다닌 탓인지 집에 와서는 오후 시간 내내 몰려드는 졸음과 피로감 때문에 빌빌거리다가 나로서는 대단히 드물게 밤 열두 시가 조금 넘어서 바로 자리에 누웠고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그러느라고 몰랐다. 날이 새로 좀 더워졌다는 걸.
그렇게 하루 무리를 하고, 어제 늘 일어나던 시간에 일어나 평소대로 아침 정리를 하고 간단한 홈트를 했다. 그런데 한 며칠간 인중에나 조금 송글송글 맺히고 말던 땀이 콧대를 따라 뺨 곳곳에 제법 질척하게 나서, 아 이거 날이 새로 좀 더워졌나 생각했다. 그날의 날씨가 어떤지는 홈트를 하고 나서 냉동실에 넣어뒀던 물티슈로 얼굴을 닦아보면 알 수 있다. 좀 뜨끔한 느낌이 들 만큼 차면 날이 좀 덜 더운 것이고 마치 천국에라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면 그날은 더운 날이다. 단연 후자였다.
그가 하던 말대로 요즘 날씨는 여름이 다섯 달 겨울이 다섯 달 봄가을이 각각 한 달이라, 이번 달까지는 내내 더우리라 생각은 하고 있었으면서도 한 며칠 날이 좀 선선해지고 습도도 많이 낮아졌기에, 좀 덜 짜증스러운 날씨가 되었기에, 그래서 에어컨을 안 틀어도 살만했기에 나도 모르게 이제 여름 다 끝났네 하고 마음을 탁 놓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때아닌 늦더위는 나를 적이 당황하게 했다. 핸드폰 어플로 확인해 보니 한낮의 기온은 33도를 넘었고 결정적으로 밤에도 온도가 26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이른바 열대야 상태였다. 다른 소소한 알림을 지워버리며 미처 확인하지 못했는데 폭염특보도 몇 번이나 상태를 바꿔가며 발령된 상태였다. 이쯤 되니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내가 이 만만치 않은 계절을 얕봤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건전지를 빼고 리모컨을 집어넣지까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문 닫고 들어갈 채비를 시작한 에어컨을 다시 트는 것은 뭔가 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애꿎은 선풍기만 쥐 잡듯 잡으며 어제 하루를 보냈다. 밤새 틀고 잔 탓인지 아침에 만져본 선풍기 모터가 뜨끈뜨끈하다. 이렇게 한 고비 넘기고 찬바람이 나고 올해도 이렇게 끝나겠지 하는 감상적인 글을 얼마 전에 썼더니 저기 죄송하지만 아직 안 끝났습니다? 하고 영화 다 끝난 줄 알고 긴장을 푼 순간 귀신같이 되돌아와 얼굴을 들이미는 연쇄살인마처럼 여름이 그렇게 되돌아온 느낌이다. 이번 주 내내 연일 30도를 오르내릴 예정이라는 핸드폰 날씨 어플 앞에서 거 참 만만치 않네, 하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아직 올해는 넉 달이나 남았고, 아직 이 여름도 끝났지 않았구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