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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대여섯 시가 되면 엄습해 오는 공복감에 관한 글은 이미 몇 번 쓴 바가 있다. 내 나름대로 거기에 대해 마련해 둔 대비책이라고 한다면 시중에 나와 있는 파이 과자 종류를 사다 놓고 한 개씩 먹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과자들은 열량이 만만치 않으면서도 양 자체는 그리 많지 않아서, 의외로 다음날의 체중계 눈금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대개가 맛있기도 하다는 점에서도 합격점을 줄 만하다.
이렇게 구비해 놓고 먹을 만한 파이 과자 종류라면 역시나 초코파이나 그 비슷한 류의 무수한 초콜릿 코팅 파이 류를 들 수 있겠다. 이런 류의 과자들은 한 팩을 사다 놓으면 제법 며칠 동안 먹을 수 있기도 하거니와 한 종류에 물려서 다른 것을 따면 그것에는 또 다른 맛이 있기 때문에 한동안 뭘 사다 놓을까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단점이 있다. 그것은 지난 얼마간의 날씨와도 무관하지 않은데, 먹는 과정에서 반드시 손끝에 반쯤 녹은 초콜릿이 묻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류의 과자들은 온도에 예민하기 때문에 사람이 느끼는 온도와는 상관없이 실제의 날씨가 일정 이상이면(모 과자의 포장지에 따르면 25도 이상이라고 한다) 상온에 두는 이상은 어김없이 포면이 눅진해져 녹은 초콜릿이 손에 묻곤 한다.
물론 별로 복잡하지 않은 해결책이 있다. 종이박스를 뜯어서 내용물을 전부 꺼낸 후에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이다. 그중 몇 개는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먹으면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먹는 기분 비슷하게 또 색다른 맛으로 먹을 수 있기도 하다. 그러나 냉장고에 넣어둔 이런 류의 과자들은 빵의 식감이 사라져서 딱딱해지기 때문에 그야말로 '과자'가 되어 버린다. 그게 못내 싫어서 연일 40도에 가까운 폭염이 몰아치는 지난여름 내내 이 과자들을 에어컨 바람이 가장 잘 닿는 실내에 두는 등의 무리수를 둬 봤지만 번번이 실패였고, 포장을 까 보면 반쯤 녹은 초콜릿이 포장지 안쪽에 묻어 엉망이 되어 있는 걸 보고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냉장고에 넣었다가 그래도 딱딱해져 버린 식감이 못내 아쉬워서 한 시간쯤 전에 밖으로 꺼내 놓았다가 하기를 부단히 반복하면서 지난여름을 났다.
10월이 되었다. 언제나처럼, 출출해져 오는 오후 시간 하나 먹으려고 포장지를 까고 속에 든 과자를 집는 순간, 손 끝으로 한 점의 초콜릿도 묻어나지 않는 걸 보고 날씨가 식었구나 하는 사실을 실감했다. 늦더위가 기승이던 추석 무렵까지야 실제로 날씨가 더웠다지만 그 이후로는 분명 날이 식었는데도 표면이 끈적하게 녹아있는 것만은 변하지 않더니, 날짜가 10월로 바뀌는 순간 거짓말처럼 초콜릿이 녹지 않은 것을 보고 정말로 가을이 왔다는 걸 실감한다. 가을이 떨어진 낙엽도 높아진 하늘도 아닌 녹지 않는 초콜릿 과자의 표면에서 오다니. 낭만은 참 이런 식으로 곁에서 떠나가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