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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Oct 12. 2024

그런 식이 아니었다면

-319

사람은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그게 얼마나 자기 옆에 바싹 다가와 있는지를 모른다. 내게는 이혼의 문제가 좀 그렇게 느껴지는 점이 있다. 결혼한 부부 두 쌍 중에 한 쌍이 이혼한다 운운하는 말을 들은 것은 꽤나 오래전부터의 이야기지만 그래봤자 어딘가 텔레비전 드라마 속에나 나올 법한 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혼이 생각보다 꽤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구나 하는 걸 깨달은 건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부터다. 요즘은 어떤 글이 인기인가 싶어 메인 화면을 둘러보면 적지 않은 '이혼'에 관한 글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실제로 이혼하는 사람도 많고, 이혼에 관심을 가진 사람도 많다는 뜻이겠거니. 뭐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좀 더 실제적인 이야기로는 오래 알고 지낸 지인 중에 한 분이 부쩍 이혼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꺼내신다는 점이기도 하다. 둘 중 누군가가 바람을 피웠다던가 상대방 몰래 주식이나 도박 같은 걸 해서 거액을 날렸다거나 하는 '명시적인' 문제 같은 건 딱히 없는 것 같은데도 그렇다.


지인 분의 이야기에서는 '평생 바뀌지 않은 남편'에 대한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두 분은 환갑을 목전에 둔 최근까지도 맞벌이를 하셨고, 남편 분이 정년을 맞아 퇴직하신 이후로도 지인 분은 여전히 직장에서 근무를 하시는 중이다. 저도 일하고 나도 일하는데,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고생하는데도 집에 오면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건 언제나 내 차지였고, 원래 여자 팔자가 그런 것이겠거니 생각하고 참았지만 이젠 저는 집에서 놀고 나는 밖에서 돈 버는데 하루종일 집에 앉아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다가 하루종일 일하고 집에 온 사람 손에 죽어도 밥을 얻어먹어야겠다는 그 심사가 이젠 징그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는 대충 그런 이야기였다. 뭐라 할 말이 없어서, 덥석 맞장구를 칠 수도 없고 그래도 한평생 살 맞대고 산 정이 있는데 운운하는 눈치 없는 소리를 하기도 싫어서 어정쩡한 대꾸만을 하다가 전화를 끊고 있다.


어제도 지인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젠 숫제 이혼 전문 변호사에게 상담까지나 받으러 가셨던 모양이다. 한평생을 이러고 살았는데 몇 년 남은지도 모르는 인생까지 이런 식으로 종짓 하면서는 더 이상 못살겠다는 생각이 어느 날 들어버렸고, 한 번 그런 생각이 들고 나니 걷잡을 수가 없어지더라는 것이 지인 분의 말씀이다. 이젠 슬하의 아들딸도 모두 시집장가 보냈으니 부모가 이혼 좀 한다고 새삼 책 잡힐 일도 없을 테고 여차하면 갈라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다고 그분은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참 다종다양한 형태의 이별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나처럼 어느 날 갑자기 한쪽이 떠나버리는 식의 이별이 있는가 하면 지인 분의 경우처럼 '이것저것 다 징글징글해져서' 결국 등 돌리고 돌아서는 형태의 이별이라는 것도 존재하는 모양이고. 그때 그가 그런 식으로 나를 떠나가지 않았다면, '이것저것 다 징글징글해져서' 등을 돌리는 저런 식의 이별은 우리에게도 찾아왔을까. 알 수 없는 문제고, 실은 별로 알고 싶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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