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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Oct 13. 2024

기름을 칠 수 있다면

-320

집에서 일을 한다는 건 그러니까, '출근하지 않아도 되지만 대신 퇴근도 못하는' 상태의 연속이라고 보면 가장 정확하다. 물론 나는 불쑥 그가 보고 싶어질 때면 언제라도 하던 일을 잠시 미뤄두고 봉안당에 다녀올 수 있고 뭔가가 먹고 싶어지면 그게 꼭 점심시간이 아니어도 사 먹으러 나갔다 올 수 있다. 그러나 그 대신 나는 저녁 아홉 시 열 시가 넘어도 일 관련으로 들어오는 카톡과 전화에 응대를 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이제 그만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침대에 눕기 전까지는 언제나 데스크탑 한 편에 일 관련 파일을 띄워놓고 산다.


내가 이렇게 산 지는 얼추 10년이 조금 지났다. 그러니 눈을 뜨면 일하기 시작해서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는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던 세월도 대충 그쯤이라고 보면 비슷하겠다. 어디 그뿐인가. 그나마 잠시 쉬는 시간에는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서핑하고 핸드폰으로 소셜커머스를 뒤지고 핸드폰으로 SNS를 하며 지낸 나날도 얼추 그 정도가 된다. 다소 장황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 자세가 엉망진창인 것이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거북목이니 라운드숄더니 하는 이야기들은 이젠 새삼스러운 것조차 되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렇게 10년 이상을 살았으니 뒷목부터 어깨까지가 남의 살처럼 느껴진 건 뭐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이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컴퓨터와 핸드폰 없이는 못 사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다 그럴 것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 부쩍 '안 아프던' 곳들이 아파오기 시작해서 슬슬 머릿속에 빨간 신호등이 켜지고 있는 중이다. 제일 먼저 신호가 온 곳은 오른팔이었다. 뒷목이 뻣뻣하고 어깨가 아파도 팔이 안 올라가는 일까지는 없더니, 올해 들어 부쩍 갑작스레 팔을 쳐들면 오른쪽 상박 쪽이 뜨끔하게 아파서 무슨 '주토피아'의 나무늘보라도 된 것 마냥 아주 조심조심, 살살 팔을 들어야 한다. 그다음으로는 오른쪽 날개뼈 언저리였다. 아무리 용을 써도 손도 안 닿는 날개뼈 언저리가 뻐근하게 아파서 마사지몰을 대고 문지르거나 폼롤러 위에 드러눕는 등의 난리를 한참이나 치는 일이 종종 생기고 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왼쪽 골반뼈 쪽이다. 이쪽은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는데, 앉아있다가 일어날 때마다 뜨끔뜨끔한 통증이 생겼다가 또 괜찮아지기를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스트레칭하고, 의자 앉아서 뭐라고 할 때는 의식적으로 허리 펴고, 아랫바에 힘주고, 다리 꼬지 말고 등등등의 몇 가지 '안전 수칙'은 있다. 그러나 아마 다들 아실 것이다. 저런 걸 일일이 지키는 건 생각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이제 몸의 삐그덕거리는 부위가 하나씩 늘어난다는 건 아무래도 슬픈 일임에는 틀림없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양철나무꾼처럼 관절마다 기름을 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괜히, 이 글을 쓰다 말고 허리를 표고 길게 기지개를 한 번 켜 본다. 어쨌든 AS도 안 되는 몸, 조금은 조심해서 써야 할 텐데.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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