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혹은 '텍스트'라는 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세상에서 가장 구태의연하고 고리타분한 매체다. 요즘 누가 글 읽어요 유튜브 보지 도 모자라서, 이젠 요즘 누가 글 읽어요 쇼츠 보지 까지 넘어간 트렌드의 흐름만 봐도 그렇다. 요즘 사람들은 운운하는 말을 붙일 것도 없다. 원래 인간이라는 종족은 귀찮은 걸 싫어하고 머리 쓰는 걸 싫어한다. 당연히 눈을 굴리고 머리를 써가며 읽고 뜻을 생각하고 이게 무슨 소린가 머리를 굴려야 하는 글보다 슥 보기만 하면 알아서 떠먹여 주는 타입의 컨텐츠가 갈수록 대중적으로 자리를 잡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안 그래도 복잡한 세상이니까.
그러나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결국 어떤 컨텐츠가 주가 되든 그 근간에는 글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던 90년도에 사람들은 이러다 사무실에서는 종이도 없어지고 프린터기도 없어지고 온통 이메일과 전자결제만으로 모든 업무가 처리되는 것을 상상했지만 고작 30년 남짓이 지난 지금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지고 기술이 좋아져도 어쨌든 사람에게는 '그것이 아니면 안 되는' 지점이라는 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만지는 일을 직업으로 갖고 살면서, 가끔은 명색 그런 인간의 브런치인데 너무 너저분한 글만 주구장창 써대는 게 아닌가 하는 새삼스러운 '현타'를 맞을 때가 있다. 메인에 걸려 있는 너무나 매끄럽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글 몇 편을 읽고 오면 더 그런 생각이 든다. 글이라는 것에 아예 거리가 먼 것도 아니고 내 이름을 단 책도 내본 적이 있고 지금도 글 쓰고 글 만지는 일을 생업으로 가지고 사는 주제에, 명색 내 브런치에는 이렇게 너저분한 신변잡기만을 700편 넘게 늘어놓고 살아서 될 일인가. 그러니까 이를테면, 명색 식당해서 먹고 산다는 사람이 쉬는 날 집에서는 봉지라면도 아닌 컵라면으로 한 끼 식사를 때우면서 살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지, 뭐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다.
책 이야기, 영화 이야기, 음악 이야기 같은, 가끔은 우아한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아 이 사람 참 고상한 사람이구나 하고 브런치에 오시는 분들에게 그렇게 보이고 싶은 욕망도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건 다 그때 생각뿐이고, 결국 이 자리에 돌아와 글을 쓰는 나는 또 언제나처럼 유통기한 넘긴 게맛살 이야기며 알이 너무 잘아서 껍질 까는 값도 안 나올 것 같은 감자 이야기며 형광등이 나간 이야기며 집 앞 햄버거 가게에서 원 플러스 원으로 사 온 햄버거 이야기 따위나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주절주절 늘어놓게 된다. 아마도 브런치의 글 쓰는 이 화면이야말로 그가 떠난 직후부터 나를 가장 오래 보듬어왔고 그래서 딱히 잘난 척할 것도 잘 사는 척할 것도 없는 어린 시절의 친구라도 만난 듯한 기분으로 나도 모르게 내 사는 이야기들을 주절거리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온갖 잡다한 검색 키워드들이 다 찍힌 통계 페이지를 보다가 잠깐, 나도 좀 우아하고 고상한 글 쓰면서 살고 싶은데, 하는 생각을 했다. 인간 자체가 우아하고는 좀 거리가 먼데 글이라고 우아하게 써지겠냐고, 그가 웃으며 핀잔을 주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야, 야. 하지 마. 사람이 있잖아. 안 하던 짓 하면 사흘 안에 죽는대. 그러고 보면 쿡방에 자주 나오시는 유명한 쉐프 한 분도 컵라면을 너무 좋아해서 업장 정리하고 들어가기 전에 꼭꼭 하나씩 끓여 먹는다던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분도 그럴진대 나 같은 평범한 인간의 브런치가 이 모양 이 꼴인 건, 뭐 크게 놀랄만한 일도 못 되는 건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