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한참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의 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의 봉안당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버스에 앉아 반쯤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하마터면 내릴 정류장을 지나칠 뻔하고 허둥지둥 버스에서 내렸다. 그 때 발치에 무슨 플라스틱 조각 같은 것이 굴러다니는 걸 봤지만 그게 나한테서 떨어진 무언가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리고 나서 보니 비에 젖어 들고 있던 우산 손잡이의 플라스틱 커버가 절반 정도 날아가고 없었다. 아차차, 그 플라스틱 조각이 여기서 떨어진 거였구나 하고 뒤늦게 깨달았지만 그야말로 버스 떠난 뒤 손들기였고 그래서 나는 순식간에 손잡이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몰골을 한 우산을 들고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 대충만 생각해도 석 달 이상이 되도록 새 우산을 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말하는 편이 맞겠다. 이유는 내 귀차니즘 외에도 몇 가지가 있다. 첫째로, 우리 집엔 다른 우산이 몇 개 있다. 그러나 그 우산들은 대개가 아예 장우산이라 휴대가 불편하거나 접는 우산이라 해도 자동이 아닌 수동이라 어딘가 불편하거나, 혹은 무게를 줄이는 데만 집중해 어딘가 부실한 녀석들 뿐이다. 그래도 이런 우산이라도 아예 없진 않으니, 그리고 손잡이 커버가 날아간 그 우산도 보기가 좀 좋지 않을 뿐 쓰고 다니는 데는 이상이 없으니 당장 비 오는 날 쓰고 나갈 뭔가가 있긴 한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는 나는 날마다 바깥에 나다니는 사람이 아니며, 그래서 우산이 그렇게까지 절실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셋째로는 그 별 것 아닌 우산 하나도 사고자 하니 이건 너무 비싼 것 같고 저건 너무 부실한 것 같고 그건 너무 불편할 것 같다는 등등의 가끔 가다 발동하는 내 은근한 까탈스러움이 도진 탓에 쓸만한 우산을 사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꾸역꾸역 시간은 흘러갔다. 그 사이 비 오는 날 밖에 나갈 일이 아주 없진 않았고, 그때마다 나는 그 손잡이 망가진 우산을 적당히 달래 가며 썼다. 그러나 그것도 어제까지였던 모양이다. 외출했다 돌아와서, 비 맞은 우산을 좀 말려두려고 우산을 펴려는 순간, 커버가 벗겨져 드러난 손잡이 내부의 버튼에 손목에 거는 스트랩이 거짓말처럼 딸려 들어가고 말았고 그 스트랩을 끄집어내려고 하니 버튼에 물려있던 이런저런 부속들이 손쓸 수도 없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이제 이 우산은 펼쳐진 채로, 접히지도 않는 처지가 되었다. 내가 늘 말하는 대로 이쯤 했으면 난 할 만큼 했으니 은퇴시켜 달라는 무언의 시위인 셈이다. 이젠 정말 도리가 없어서, 인터넷을 검색해 적당한 가격의 적당한 디자인의 적당한 좋은 리뷰들이 달려있는 우산 하나를 골라 주문했다.
텔레비전에 모니터에 청소기에 보일러에, 아주 돌아가며 애를 먹이더니 이젠 우산 차례냐, 하고 혼자 투덜거려 본다. 망가져도 바람 불어 살이 뒤집히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스트랩이 버튼에 딸려 들어가 부속이 망가지다니 이런 건 말도 처음 듣는다고. 아니, 다른 것들이야 최소한 수십만 원은 하는 것들이라 그런다지만 만 원 남짓 주면 새것 하나 살 수 있는 우산을 가지고 몇 달 넘게 미련을 떠는 꼴이 보기 싫어서 그랬다고 아마도 그가 그렇게 말하고 있을 것 같다. 그러게. 원래도 좀 그런 성품이긴 했지만 어째 미련만 점점 늘어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