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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나는 세 살 차이가 났다. 뭐 이만하면 거의 동시대 사람이라고 봐도 크게 틀리진 않은데, 다만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그는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였고 나는 초창기이긴 하지만 수능 세대이긴 하다. 그래서 해마다 수능 무렵만 되면 그는 '내년부터는 대입 시험 스타일 자체가 획기적으로 바뀌기 때문에 너희들같이 달달 외우는 식으로 공부한 놈들은 대학 못 간다'고 어마어마하게 겁을 줘서 하향지원이 엄청나게 많았던 이야기를 했고 나는 시행 첫해부터 4년 동안 매년 패턴이 바뀐 '수능 몰모트' 신세였던 이야기를 하곤 했다. 실제로 그랬다. 수능은 우리보다 두 살 위 학년에 처음 시작되었는데 첫 해는 수능을 한 해에 두 번 봐서 잘 나온 성적을 가지고 입시에 썼다. 그다음 해에는 그러던 것이 한 번으로 줄어들었고 우리 때에는 대학별 본고사가 생겼으며 우리 다음 해부터는 수능이 400점 만점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래도 저래도 공통적인 점 한 가지는, '시험 치는 날만 되면 귀신같이 추워지는 날씨'에 대한 추억이었다. 학력고사는 뭐 말할 필요가 없다. 내가 기억하기로 학력고사는 내내 '그 해 가장 추운 날' 근처에 치러졌다. 가끔은 폭설이 내리기도 했다. 그래서 왜 저렇게 중요한 시험을 이렇게 추운 날 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은 아주 오랫동안 내 어린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러던 것이 수능으로 바뀌고 시험 날짜가 11월 중순으로 당겨지면서부터는 없어지나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능날은 아직 제대로 겨울이 온 것도 아닌 주제에 그 언저리만은 매섭게 춥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면, 이제 '날이 식었다'도 아니고 '서늘해졌다'도 아닌 '추운데?' 하는 느낌이, 지난 주말 때 아니게 오던 비가 그치고 난 후로 귀신같이 들고 있다. 아니, 이미 몇 번 말한 바 한 달 전까지 더워서 에어컨 틀었고, 그러다 못 견뎌서 결국 미용실까지 가서 머리까지 자르고 왔다고 항변해 봐도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사정인 모양이다. 이제 한 달쯤 후면 수능을 볼 테고, 그때쯤 또 한 번 바싹 추워서 올 겨울의 예고편을 때리려면 지금부터 부지런히 수은주를 뚝뚝 떨어뜨려야 할 게 아니냐는 게 아마 날씨의 속내인 모양이다.
어디 두고 봐요 이제 조만간 패딩 꺼내야 될 걸 하고 말씀하시던 미용실 사장님의 말씀이 자꾸만 귓전에 맴돈다. 정말로 이렇게, 가을 옷이라고 생긴 건 한 번 입어보지도 못하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겨울로 진입하는 건가. 어쩜 시간은, 날짜는 이렇게 잘도 가는지 모르겠다. 심각하게 그런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