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고 미루던 수개월 묵은 일거리 하나를 드디어 해치웠다. 거기서 끝나면 참 행복했겠지만 거기 드는 비용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딱 40만 원이 더 나왔다. 40만 원이면 마트의 장을 8번 볼 수 있는 돈이고 대략 열 달 치 핸드폰 요금을 낼 수 있는 돈이며 며칠 후 생일을 맞아 저걸 하나 사 먹어볼까 말까 목하 고민 중인 집 근처 베이커리의 초콜릿 무스 케이크를 열 개 살 수 있는 돈이다. 그냥, 에이 그럴 수 있지, 하고 넘겨버리기에는 다소 뼈아픈 지출이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도리 없는 일이어서 불문곡직 지출은 했다. 그러나 그래놓고 내심 억울하고 아까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렇게 한 번 박살 난 멘탈은 좀처럼 원상회복이 되지 않아서, 꾸역꾸역 습관에 가까운 루틴으로 어떻게든 오전에 할 일을 마치고 뭐라고 먹고 정신을 차리자고 스스로 다잡았다. 날씨도 부쩍 싸늘해졌는데 대충 우동이나 하나 끓여서 밥 말아먹고 때우자. 그렇게 생각하고 우동을 끓였다. 그런데 신나게 끓고 있는 우동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뒤통수가 뜨끔해져 밥솥을 열어보니 남은 밥이 하나도 없었다. 오늘은 식은 밥이 없고 새 밥을 해서 먹어야 할 타이밍인데, 아침에 생각지 못한 지출로 멘탈이 나가버린 내가 식단을 착각한 것이다. 여기서 내 멘탈은 2차로 박살이 나고 말았다.
밥이 없다고 끓인 우동을 버릴 수는 없고, 그냥 그것 하나만 호로록 먹고 대충 점심을 때웠다. 그러고 나니 배가 든든하게 차지 않은 탓인지 한번 바닥으로 처박힌 멘탈은 오후가 되어도 도통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 나는 그야말로 어제 하루 종일 빌빌거렸고 그러던 사이 저녁이 되었다. 아. 안 되겠다. 뭐라도 먹자. 그렇게 더듬더듬 냉장고를 열어보다가.
떡볶이나 해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매운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특히나 떡볶이는 더더욱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떡볶이가 먹고 싶은' 날은 1년이면 그야말로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하고, 어제가 그런 날이었던 모양이다. 집에 떡볶이 떡은 없다. 그러나 떡국 끓여 먹고 냉동실에 얼려둔 떡국 떡이 한 봉지 있어서, 게다가 지인께서 보내주신 어묵이 아직도 냉동실에 상당량 고스란히 들어 있어서 그냥 그걸로 해 먹기로 했다. 떡볶이의 좋은 점 중 하나는 굳이 레시피를 찾아보지 않아도 '대충'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적당한 물에 떡국떡과 어묵과 썬 파를 넣고, 고추장 고춧가루 설탕 간장을 대충 넣은 양념장을 붓고 푹푹 끓인다. 그냥 그거면 된다. 더 맛있게 만드는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뭐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아서, 딱 그렇게만 해서 만든 떡볶이 한 그릇을 들고 앉았다.
대충 만든 떡볶이는 엄청나게 뜨거웠고, 내 입엔 상당히 매웠다. 그러나 한 조각 집어먹을 때마다 뜨겁다고, 맵다고 호들갑을 떨며 한 그릇을 다 먹고 나니 놀라울 만큼 제정신이 돌아왔다. 그깟 40만 원(이라기에는 앞서도 구구절절 말했듯 큰돈이긴 하다)에 세상 다 산 것처럼 바닥으로 처박히던 멘탈도 웬만큼 잡히고, 40만 원을 까먹었으면 50만 원을 벌면 되지 하는 데까지는 회복되었다. 땅이 꺼져라 한숨만 내쉬며 보낸 오전 시간이 의아하게 여겨질 정도로.
사람들은 이래서 스트레스가 쌓이면 매운 것을, 특히 떡볶이를 먹는가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