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책상 데스크탑에는 세 개의 브라우저 페이지가 띄워져 있다. 하나는 그가 쓰던 포털 사이트의 일정 관리 페이지(이건 요즘 내가 뒤를 이어 쓰고 있다) 또 하나는 그가 떠나기 전날 내게 만들어준 두부 유부초밥 레시피, 마지막 하나는 '라면 특이하고 맛있게 끓이는 방법'에 대한 페이지였다. 물론 그가 떠난 것은 지금부터 2년 반 전이니 그날 그가 보고 있던 그 상태 그대로는 아니다. 그 사이 수도 없이 재부팅을 했지만 그때마다 굳이 굳이 그 페이지들을 찾아서 똑같이 띄워놓고 있다. 괜히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그의 컴퓨터를 너무 오래 켜둔 것 같아 오늘은 간만에 재부팅을 좀 했다. 재부팅을 하고 나서 순서대로, 일정 페이지를 띄우고 방문기록을 뒤져 두부 유부초밥 페이지를 띄웠다. 그리고 마지막 라면 페이지를 띄우려는데, 방문 기록 어디에도 그 페이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유사한 페이지들을 전부 눌러보았지만 그 페이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뭘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지만 방문기록에서 감쪽같이 누락돼 버린 모양이었다.
순간 눈앞이 새하얘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근이 잡혀 있어 나가봐야 했고, 오래 컴퓨터를 붙들고 앉아 씨름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나는 일단 페이지 두 개만 띄워 놓고는 황황히 집을 나섰다. 그러나 가는 버스 안에서도, 오는 버스 안에서도 그 '라면 페이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유난을 떨던 것에 비하면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그 '라면' 페이지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유부초밥이야 그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해준 음식이어서 잊어버릴래야 잊어버릴 수가 없다지만 라면은 그런 것도 아니고, 이 사람이 도대체 나한테 뭘 만들어주고 싶었을까를 생각하는 것부터가 괴로워 그다지 열심히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하면 변명이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으며, 그 페이지에 도대체 어떤 내용이 있었던지를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면 어떻게든 찾아서 다시 띄워놓는 수밖엔 없었으니까.
그러다가 불쑥 떠오른 것이 '청양고추'였다. 그러나 라면에 청양고추를 넣는 레시피는 너무나도 흔해서 이걸로는 아무것도 특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참이나 또 온갖 키워드로 다 검색을 해 보았다. 그나 나나 둘 다 매운 걸 잘 못 먹는 맵찔이들이었고, 그런 마당에 '매운' 라면을 끓이려고 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데도 청양고추가 들어간다면 덜 맵게 만드는 뭔가도 들어가지 않았을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치즈였지만 고작 치즈에 청양고추 조금 썰어 넣는 정도의 레시피를 그가 검색까지나 해 가며 보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머리를 굴리다가 갑자기 불쑥 떠오른 것이 '마요네즈'였다. 혹시나 하는 기분이 청양고추와 마요네즈를 넣고 라면을 끓이는 레시피가 있는지를 검색해 보았다. 과연 그런 라면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북마크 해둔 백여 가지의 라면 레시피 중에서 내 기억 속에 토막토막 남아있는 그 페이지를 정확히 찾아내 다시 띄워놓을 수가 있었다.
이렇게까지 할 일이었는지, 그건 모르겠다. 이미 앞서에서도 말한 바 지금 그의 컴퓨터에 띄워져 있는 페이지들은 다 재부팅을 거치면서 내가 새로 띄워놓은 것들이니 이미 떠나기 전날 밤 그가 보던 그 페이지들은 아닌 셈이다. 그러나 왠지 그렇게 해놔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라도, 비록 그대로가 아니라 내가 흉내만 낸 것이라 하더라도 뭐라도 하나 그의 흔적을 내 곁에 붙들어놓고 싶었다. 그래서 그 페이지를 찾아서 띄워놓고서야 겨우 안심할 수 있었다.
그 라면 레시피를 찾느라 뒤져본 그의 북마크에 정리돼 있는 음식 레시피들은, 그걸 매일매일 하나씩 해 먹는다 치면 2, 3년간 식단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겠다 싶을 만큼 많았다. 그중에는 이름도 처음 들어본 것들도 있었다. 그는 아마도, 지금이 아닌 언젠가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 레시피들을 하나하나 모아 왔을 것이다. 그렇게나 많이 모았으면 한 번씩이라도 다 해주고 갈 일이지. 도대체 뭐가 그렇게 급하더냐고 애꿎은 그의 사진을 향해 눈을 흘긴다. 그러고 싶어서 그랬던 건 아닐 텐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