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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Nov 05. 2024

길 좀 비켜주세요

-343

여기저기 보내야 할 택배가 한 열 개쯤 있었다. 나름 파손에 주의해야 하는 물건이어서 아무리 생각해도 우체국 이상의 선택지를 찾기가 어려웠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우편 취급소는 30분쯤 걸어가면 있긴 하지만 열 개나 되는 박스를 이고 지고 들고 거기까지 갈 자신은 도저히 없고, 버스를 탄다고 해도 정류소에서의 거리도 제법 되는 관계로 어쩔 수 없이 택시를 부르기로 했다. 이럴 때마다 후회한다. 운전을 배웠어야 했다고. 천년만년 옆에서 운전기사 해줄 듯이 굴다가 도망가버린 사람에 대한 원망은 차치하고라도.


쌓아둔 박스를 우선 현관에다 쌓아놓고, 일차로 그걸 집 밖으로 옮기고, 이차로 엘리베이터 앞까지 옮기고, 삼차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1층으로 옮겼다. 그러는 사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려는 같은 아파트 주민 분을 세 분이나 만나서 죄송하다고 몇 번이나 꾸벅꾸벅 고개를 숙여가며 십여 개나 되는 박스를 가까스로 1층까지 옮겼다. 이제 바깥으로 들고나가기만 하면 될 참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나 들고 왔으니 이제 다 했다고, 벌써 헥헥거리는 나 자신을 다독이며 1차분 박스 세 개를 쌓아 들고 막 바깥으로 나가려던 참이었다. 열어놓은 아파트 현관에 뭔가 인기척이라고나 해야 할 것이 있었다. 이게 뭐야, 하고 들여다보니 사마귀였다. 우와, 세상에. 나는 하던 일도 잠시 잊고 이 위풍당당한 곤충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정말로 사마귀가 사람을 '무는' 지는 잘 모르겠다. 어릴 때는 그 피부에 생기는 '사마귀'가 사마귀한테 물리면 생기는 거라고 말하던 애들이 있었고 그 말을 진짜 믿었던 기억도 있으니까. 지금이야 그런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사마귀가 사람을 무는지 아닌지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물고 말고를 떠나서 일단 이 녀석은 곤충 주제에 징그럽다기보다 '무서웠다'. 저런 녀석이 입구에 버티고 있으니 영 지나가는 게 껄끄러워 일부러 제법 떨어진 거리에서 발을 몇 번 쾅쾅 굴러봤지만 이 녀석은 그야말로 들은 척도 안 하고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결국 나는 녀석을 쫓아내는 것을 포기하고, 벽에 붙다시피 붙어서 택배박스 십여 개를 전부 다 밖으로 가지고 나왔다.


우체국에 들러 일을 보고 돌아오니 녀석은 가고 없었다. 제 갈 길을 간 건지 아니면 성질 급한 인간의 손에 죽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외로, 요즘 핸드폰 카메라 정말 좋긴 좋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줌 당겨서 찍은 건데도 이 정도로 나오는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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