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에 덜렁대고 꼼꼼하지 못한 성격이다. 어제 그 소포 일만 해도 그랬다. 그렇게 택시까지 불러서 우편취급소까지 가 놓고서야 나는 부쳐야 될 것이 두 개 더 있었던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을 기억해 내고 아깝고 원통해서 발을 굴렀다. 기껏 싸들고 온 것들이야 잠깐 맡겨둔다고는 하지만 집에 가서 두 개를 다시 포장해서 박스까지 싸서 다시 들고 와야 될 것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결국 나는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라고 아주 심플하게 결론을 내리고는 일단 꾸역꾸역 싸짊어지고 간 소포 10개만 부치고 두 개는 다음날 부치기로 했다.
어딘가에 나갔다 올 일이 있으면 그 일을 전후로 뭔가를 하는 리듬이 다 흐트러지기 때문에 그냥 아침에 할 정리만 해놓고 나갔다 오는 게 제일 좋다. 그래서 어제도 홈트까지 해 놓고, 전날 저녁에 차곡차곡 포장해 둔 박스 두 개를 들고 집을 나섰다. 다행히 박스 두 개 정도는 어떻게 거천할 수가 있어서 택시까지는 부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다만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있었다. '날씨가 추웠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정류장 위로 그늘이 드리운 탓인지 나름 긴팔 스웨터를 입고 나갔는데도 그랬다. 아니 저기 어제까지만 해도 이런 분위기 아니셨잖아요. 그까짓 박스 열 개를 1층까지 들고 내려가느라 간만에 몸을 좀 쓰긴 했다지만 어젠 분명 '춥다'는 느낌까진 없었는데. 핸드폰을 열어보니 기온이 14도를 가리키고 있다. 아. 추울만하네. 그렇게 생각하고 그냥 입을 다물었다.
정말로 소포 부칠 일을 전부 털어버리고, 여기까지 온 김에 요거트라도 사러 가까이 있는 마트에 들렀다. 사방에 막대과자와 초콜릿이 가득히 쌓여있어서 처음엔 그러고 보니 다음 주에 저 과자 주는 날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다음주가 수능인 것이 떠올랐다. 날씨가 단 하루 사이에 이렇게 갑자기 추워진 것이 일사천리로 이해가 갔다. 이제 그럴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구나 하고.
물론 수능을 치는 건 다음 해 대학교에 입학할 목표가 있는 특정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수능이니 대입이니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수능이라는 이벤트는 하나의 이정표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아, 이젠 정말로 올 한 해가 다 끝나버렸구나 하는 그런 느낌 말이다. 그러고 보니 갑작스레 입원했다가 퇴원한 것도 꼭 작년 수능 칠 무렵이었으니 거의 이맘때의 일이다. 지나간 1년 동안 난 도대체 뭘 하면서 살았는지, 그런 걸 생각하니 잠깐 정신이 아득해진다.
하루 사이 추워졌다고 투덜거릴 것이 아니라 지난 1년간 도대체 뭘 했다고 시간만 이렇게 잘 가는가를 투덜거려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시간 정말 잘 간다. 남은 두 달이 채 못 되는 시간 동안 뭘 해야 지나간 올 한 해가 조금이라도 덜 미안할지, 이제부터는 그런 것을 생각할 때가 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