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서울에 살 때의 이야기다. 아주 가끔, 매우 좋은 일이 생기면 같이 '목에 기름칠을 하러 가던' 고깃집이 있었다. 그의 말로는 허영만 화백의 '식객' 소고기 정형 편에 나오는 소고기 정형사의 실제 모델이 되신 분이 하는 집이라고 하는데 정말인지 아닌지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 집은 그러니까, 소를 통째로 들여와서 주인이 직접 정형을 해서 파는 일종의 '정육식당'이었다. 그래서 좋은 등급 한우를 파는, 무려 서울에 있는 고깃집 치고는 납득할만한 가격이어서 더 좋기도 했다. 물론 서울을 떠나면서 발을 끊은 지가 10년도 넘었으니 요즘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 집에 가면 그는 꼭 육회를 시켰다. 구워서 먹는 고기야 고기가 좀 별로여도 구운 맛에 먹지만 날로 먹는 육회는 이렇게 좋은 고기 파는 집에 왔을 때 꼭 먹고 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었다. 그렇게 시킨 육회는, 뭐 사양할 것도 없이 아주 맛있게 먹곤 했다. 다만 문제는, 그러고 나면 나는 어김없이 배탈이 났다. 이상하게도 나는 한우 육회 같은 고급진 음식을 먹을 입이 못 되는 것인지 육회를 먹고 난 후에는 어김없이 배탈이 나곤 했다. 그 와중에 신기한 것은 육회 비빔밥은 또 괜찮고, 오로지 생으로 고기만 먹는 육회만 그렇다는 사실이다. 나에 관한 한은 엄청나게 눈치가 빨랐던 그가 그 사실을 끝까지 몰랐던 것에는 아마 내가 육회비빔밥을 매우 좋아했다는 사실이 눈가림으로 크게 한몫을 하지 않았나도 싶다.
나는 이 사실을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의 성격에 그런 말을 하면 분명 다시는 육회를 쳐다보지도 않았을 터라 그게 싫어서라는 그런 지고지순한 이유만은 아니고, 그렇게 매번 먹고 나면 배탈이 나면서도 나 또한 그 자주는 못 먹는 육회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도 언젠가는 말하게 될 기회 혹은 그가 알게 될 기회가 있을 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미적거리는 사이에 그는 먼저 떠났고, 그래서 그는 아마 영영 내가 육회를 먹고 나면 어김없이 혼자 배앓이를 했다는 사실을 모르게 되었다.
외출할 일이 있어 바깥에 나갔다가 점심으로 간만에 육회비빔밥을 먹으러 갔다. 고추장 푹푹 떠 넣고 밥을 비비면서 문득 그 옛날 서울에 있던 그 소고기 정육 식당을 생각했다. 그 집에서 먹던 꽃등심의 맛과, 그가 육회를 시킬 때 아 그거 먹으면 또 배탈 날 텐데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가도 에라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더라 하고는 배탈이 날 때 나더라도 용감하게 젓가락을 들고 윤기가 반들반들 나던 그 육회에 달려들던 예전의 나를 생각했다. 이제 나는 혼자 남았고 그러니 누구 눈치를 보느라 사실 나 육회만 먹으면 배탈 나는데 하는 말을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냥 굳이 돈을 주고 사 먹지 않으면 되게 되었다.
그래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은 건. 어쨌든 그는 내 곁에서, 같이 육회를 사 먹은 그 순간들을 좋은 기억으로 가지고 갔을 테니까. 지금쯤에는, 내가 그간 한 모든 참말과 거짓말을 다 알게 되었을 지금쯤에는 왜 인간이 그렇게 미련하냐고 조금쯤 미안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