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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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뭔가를 꼼지락거리다가 눈을 들어보니 저녁 여덟 시가 되었는데도 날이 훤했다. 이야, 날 참 길다. 그렇게 중얼거리고 달력을 보니, 그날이 마침 하지였다. 내게 절기라는 것은 겨우 그 정도의 의미였다. 해가 긴 날. 밤이 긴 날. 봄이 왔다는데 아직도 추운 날.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얼어 죽는다는 날 등등. 그냥 달력의 날짜 아래 조그맣게 적힌 날 정도의 의미 밖에는. 백중이라는 절기도 그런 많은 날들 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절기는 조상들이 농사를 짓던 시절에 1년의 농사짓는 스케줄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농사 근처에도 가지 않는 후손으로서는 그 절기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도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와의 이별이 너무나 갑작스러웠기 때문에 미처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고, 그래서 제대로 된 빈소를 차려 생전의 그와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과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눌 기회조차 주지 못하고 서둘러 떠나보낸 것은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그를 떠나보낸 후 한동안, 나는 여기서 뭐라도 해줄 것이 없는지를 미친 듯이 찾았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 연등을 올리는 거였고 연등 불사를 상담하는 과정에서 백중기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백중에는 저승문이 열려 이승을 떠도는 원혼들이 저승으로 간다고, 그래서 조상 중에 아프고 힘들게 돌아가신 분이 계시면 백중에 기도를 올리면 좋다는 전승이 있다는 걸 난 이번이야 알았다. 예전 같았으면 코웃음을 치고 넘겼을 일을, 내 일이 걸리니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올해 백중은 8월 12일이었고 그 49일 전인 6월 25일부터 매주 한 번씩 천도재를 지낸다는 말을 듣고 나는 두 번도 고민하지 않고 그의 연등을 올린 절 한 곳에 백중기도를 접수했다.


그리고 어제는 그 첫 번째 제사인 소위 입제를 하는 날이었다.


나는 딱히 불교 신자였던 적이 없다. 절에 가 본 기억이라고는 어렸을 때 가끔 절에 가시던 어머니를 따라 두어 번 가 본 것이 전부였다. 당연히 절에서 하는 예불은 어떻게 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 그런 것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래도 그냥 가봐야 할 것 같았다. 초파일도 아닌데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나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절에 그렇게 사람이 많은 걸 어제 처음 봤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각자의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그 극락왕생을 빌러 왔구나 생각하니 어쩐지 뭉클해졌다.


입제는 관세음보살을 모신 불전에서 진행되었다. 나는 법당 가운데 차려진 제사상 앞에 나가 진행하시는 보살님의 안내에 따라 술 두 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 그리고 법당 벽에 붙어 있는 그의 위패를 찾아내 한참이나 그 앞에 서 있다가 법당을 물러나왔다. 그러는 동안도 모여든 사람들은 스님의 독경에 따라 엄숙하게 불경을 암송하고 정해진 박자에 따라 절을 했다. 나는 그 경건한 자리에 감히 들어가 낄 엄두를 내지 못하고 법당 바깥에 서서 손을 모으고 남들의 반도 채 살지 못하고 떠난 사람을 부디 가엾게 여겨 보살펴 주시기를 한참 동안 빌었다. 내가 오빠 덕분에 아주 별 짓을 다 해본다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제 장마철에 접어든다고 한다. 어쩌면 당분간 주말마다 비를 맞으며 절에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건 또 그것대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제 이런 것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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