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떠나고 난 후 내게는 못하는 일들이 몇 가지 생겼다. 그것은 혼자 있는 집에 에어컨을 틀 엄두가 나지 않는다거나 혼자 먹는 밥을 그와 함께 먹을 때처럼 온갖 그릇을 다 꺼내 세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든가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감정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집 앞의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를 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여름이 되면 그와 나는 종종 그 집에 들러 싸면 300원, 비싸면 2천 원 정도 하는 아이스크림을 양껏 골라 담아와서는 냉동실에 넣어놓고 하나씩 꺼내 먹으며 여름을 났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니, 본능적인 거부감 비슷한 감정마저 든다. 이거야말로 일종의 PTSD 비슷한 감정이 아닐까 하고 나는 혼자 생각하고 있다.
그가 떠난 후 두 달이 지나고 이제 석 달째가 가까워 오고 있는데 나는 아직도 실시간 방송을 보지 못한다. 특히나 아마도 그와 함께 본 마지막 프로그램이었을 한 시사 예능 프로그램은 제목만 마주쳐도 흠칫흠칫 놀라곤 한다. 그래서 나는 본의 아니게 두 달 조금 넘게 세상 돌아가는 모양을 모르고 살고 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와의 마지막 며칠이 묻어있는 모든 것을 외면하고, 그것들에게서 도망치고 있다. 내가 도피의 수단으로 공중파 정액제가 아닌 한 케이블 예능프로그램 정액제를 끊은 것도 아마 그래서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나는 아마도 무의식 중에 시간이 흘러가는 걸 거부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의 책상에 있는 컴퓨터에는 아직도, 떠나기 전날 저녁 그가 내게 만들어주기 위해 레시피를 찾아보았던 두부 유부초밥의 레시피가 적힌 어느 블로그가 띄워져 있다. 어느 날 그의 책상을 닦던 중 브라우저 업데이트가 떠 있는 것을 무심결에 눌렀다가 브라우저가 꺼져 버렸을 때, 나는 패닉에 빠져 손까지 떨며 그 페이지를 다시 찾아서 기어이 원래 위치에 다시 띄워놓고서야 안심했다. 그러니까 지금 그의 컴퓨터에 열려 있는 두부 유부초밥 레시피 페이지는 그가 열어놓은 것이 아닌 셈이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나는 기어이 그렇게 해 놓고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이런 걸 보면 나는 그냥 그가 떠나기 직전 그 어딘가에서 시간이 멈추었기를 바라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아직은 그 밖으로 걸어 나올 용기가 없는 모양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와의 이별은 아직도 유예 중인 셈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만사를 젖혀놓고 봉안당에 그를 보러 다녀오고, 그를 위해 연등을 달고, 백중 입제를 다녀오면서도 나는 아직도 그를 온전히 놓아 보내지 못한 모양이다.
이런 나의 태도는 대충만 보기에도 '정상'은 아니다. 아마도 나는 아마 내게서 그를 빼앗아간 그 모든 것을 향해 화를 내고 있는 상태가 아닐까. 그러나 나는 억지로 그 모든 것들을 해결하려고 애를 쓰지 않을 생각이다. 그와 자주 갔던 가게에는 갈 엄두가 나지 않으면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안 갈 거고 실시간 방송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는 그냥 안 볼 생각이다. 내게는 억지로 빨리 나아져서 누군가에게 그 경과를 보고해야 할 의무 같은 건 없다.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그에게라면 모를까. 그러나 그도 어딘가 살짝 고장 난 듯한 지금의 내 상태를 이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