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1년이 지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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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텔레비전의 실시간 방송을 보지 못하게 된 지 석 달 가까이가 되어간다. 그런 와중에도 혼자 남은 집이 너무 적적해서 텔레비전을 꺼놓을 엄두는 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요즘 내가 겪는 애로 중의 하나는 '아무 생각 없이 틀어놓을 프로그램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다. 너무 슬픈 것은 나까지 덩달아 우울해져서 싫고 너무 웃기기만 하는 것은 딴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싫다. 그를 너무 떠올리게 하는 것도 싫고 그와는 너무 상관없는 것도 싫다. 편수가 너무 짧은 것은 하룻나절만에 다 봐버리고 또 다른 프로그램을 찾아야 해서 싫고 너무 긴 것은 틀어놓고 있다 보면 중간중간 멀미 비슷한 울렁증이 나서 싫다. 이런 괴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프로그램을 찾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프로젝트다.


며칠 전부터 나는 반려견의 행동을 교정해주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사실 TV 동물농장 류의 프로그램은 거의 언제 어느 상황에서나 먹히기 때문에 그 연관 컨텐츠 정도로 생각하고 보기 시작했다. 개나 고양이를 한 마리 길러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옆에 있던 사람도 후회 없이 사랑하지 못한 내가 나에게 생명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그 녀석들을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면 어김없이 한 발 물러서게 된다. 그 대리만족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개들의 적당한 말썽과 그 말썽이 교정돼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 정도를 기대하고 시작한 이 프로그램에는, 그러나 요소요소에 생각보다 많은 함정이 있었다. 개의 수명은 보통 15년 정도로 사람보다 짧다. 그 말인즉 가족처럼 생각하던 반려견을 떠나보내고 슬퍼하는 사람의 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프로그램의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그런 에피소드들은, 사실은 내가 그토록이나 피해 다니고 싶어 하던 그런 것들이었다.


어젯밤 잠자리에 누울 때쯤 그런 에피소드를 봤다. 버려진 개를 입양해 집으로 데려왔지만 그 개는 이미 몸의 여러 군데에 다양한 병을 앓고 있는 상태였고, 결국 개는 1년 정도 투병생활을 하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러나 그 개가 떠나고 나서도 주인 부부는 1년 동안이나 개가 좋아하던 방석들, 쿠션들, 장난감들, 산책할 때 쓰던 목줄 등을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개가 떠난 후 1년이 지나 개를 묻어놓은 곳에 가서 그 무덤을 어루만지며 춥지는 않은지, 밥은 잘 먹고 있는지, 그런 것들을 묻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서 한참을 울었다. 1년 정도 기르던 개가 떠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저렇게 슬픈 거라면 내 곁에 30년 가까이를 존재하던 사람을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떠나보낸 나는 언제쯤이면 조금 괜찮아지는 것일까. 괜찮아질 수 있기는 한 것일까. 괜찮아진다면 어느 만큼 괜찮아질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가지에 가지를 치고 뻗어나가, 나는 가뜩이나 요즘 길게 자지 못하는 잠을 한참이나 설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문제에 정답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어쩌면 나는 남은 내 삶 전부를 그 답을 찾는 데 바쳐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디까지, 얼마나 괜찮아질 수 있는 건지. 그리고 그걸 과연 '괜찮아진' 상태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 그 정답도 없고, 채점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없는 문제에 대해서.


9834일까진 아니라도 980일쯤이 지나면 답 비슷한 것을 좀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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