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에 꽃을 사러 가 보면 놀라게 되는 점 중의 하나가 우리가 관념적으로 이름을 알고 있는 꽃이 다 꽃집에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제철이 아니라든가 하는 이유겠지만 2년 남짓 꽃을 사러 다녀본 결과 그 이유가 다는 아니며, 꽃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가 장미나 튤립, 백합 등 몇 종류의 꽃에 극심하게 편중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가끔 '그림'으로만 알고 있는 꽃을 실제로 좀 사 보고 싶어도 그게 그렇게 여의치 않은 경우가 더러 있다.
이번에 산 꽃은 유찰꽃이다. 경매에 나왔다가 낙찰되지 못해서 폐기될 위기에 처한 꽃들을 제값보다 싸게 파는 상품이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매번 오는 꽃의 구성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번엔 어떤 꽃이 올 것인지를 기대하는 재미가 있다. 물론 그나마도 대부분은 장미나 소국 등 익히 잘 아는 꽃들이지만.
그런데 이번 유찰꽃에는 생각지도 못한 다크호스가 한 송이 있었다. 아이리스라고도 하는 붓꽃이다. 붓꽃이라고 하면 바디워시나 샴푸의 패키지에도 워낙 많이 그려져 있어서 익히 잘 아는 꽃의 범주에 들어가기는 한데, 지난 2년 간 그렇게나 꽃을 사다 나르면서 단 한 번도 내 눈에 띈 적이 없어 사 본 적이 없었다. 이야. 귀한 손님이 오셨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얼른 빈 꽃병에 물을 담고, 다른 꽃보다 제일 먼저 줄기를 다듬어 꽃병에 모셨다.
얼마 전 국화의 이파리에서 쑥갓을 연상하고 인터넷에 찾아보니 국화와 쑥같이 같은 과더라 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붓꽃의 줄기가 생긴 모양은 튤립의 그것과 매우 비슷했고 좀 더 가지를 치면 백합과도 비슷했다. 이 세 꽃은 모두 외떡잎식물이며 구근으로 번식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길고 가는 잎새가 줄기를 감싸듯이 돋아나는 이런 줄기 모양은 구근으로 번식하는 꽃의 공통적인 특징이라도 한 것일까.
한나절 꽃병에 꽂아두었더니 시들시들하던 것이 싹 가시고 기세 좋게 꽃잎을 펼치는 모양을 보고 있자니 내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다. 한 송이로는 뭔가 좀 아쉬운 느낌이라 꽃집에 좀 다양한 꽃들을 팔아서 좀 사다 꽂아놓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붓꽃이라는 이름보다는 아이리스라는 영어 이름이 더 어감이 예쁜 탓인지 자주 불린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신들의 여왕인 헤라 여신이 자신의 충복인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의 노고를 치하하며 선물한 꽃이라 여신의 이름을 따서 아이리스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며, 그래서 그 꽃말 또한 '좋은 소식'이라고 한다. 조만간 뭐든 좀 좋은 소식이 좀 있으려는지. 괜히 그런 기대를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