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득 Nov 25. 2024

알람 대신에

-363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일말의 미적거림도 없이 상큼하고 깔끔하게 기지개 한 번 주욱 켜고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그야말로 원초적인 레벨에서의 '더 자고 싶다'는 느낌이든 아니면 요즘처럼 갑자기 싸늘해진 날씨에 따뜻한 이불 밖으로 나가는 게 죽기보다 싫다는 게으름이든 혹은 또 이렇게 새로운 하루가 와 버렸고 이 지긋지긋한 하루를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앞이 막막해지든, 어떤 이유에서든 많은 사람들이 선뜻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고.


여름엔 조금 덜했던 듯싶다. 그런데 날이 쌀쌀해지는 것을 지나 조금 추워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걷어치우고 침대 밖으로 한 발을 떼는 것이 하루 중 가장 힘든 순간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아침에 시간을 맞춰 어디에 출근할 필요는 없는 점을 핑계 삼아 굳이 알람을 맞춰두지 않고 잠을 자지면 사람의 신경이라는 것은 놀라우리만큼 예민해서 간밤에 특별히 잠을 설치지 않은 이상 내가 일어나는 시간은 대개 비슷한 편이고 일단 한 번 눈을 뜨고 나면 아마 많은 분들이 그러할 것이듯 5분만 10분만 하며 갖은 핑계를 다 대가며 꾸무럭거린다. 그러는 사이 역설적으로 지금 당장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찾느라 내 머리는 하루 중 그 어느 때보다도 맹렬히 돌아간다. 그러다가 고깟 5분 10분 더 누워있자고 무슨 삽질인가 하는 생각에 '현타'를 맞고 순순히 일어나게 되기가 십상이고.


그리고 이런 순간에, 내게 가장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 것은 의외로 꽃병 속의 꽃들이다.


사온 지 얼마 안 된 꽃들은 물을 아주 잘 먹는다. 종류에 따라서는 자리에 눕기 전에 꽃병에 물을 조금 더 부어주어야 다음날 아침에 물 밖으로 드러난 꽃줄기를 마주하는 상황을 면할 수 있는 꽃들도 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대개 사온 지 얼마 안 된 꽃들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물을 갈아주려고 보면 내가 조금만 더 꾸물거렸으면 물이 줄기 아래로 내려갔겠구나 싶을 만큼 물을 빨리, 잘 마신다. 그러니 꽃병에 물을 갈아주고 줄기 끝을 새로 다듬어주기 위해서라도 적당히 꾸물거리고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껏 5분만 더 10분만 더 하고 이어지는 순간을 박살 내는 핑계로는 이 핑계가 가장 효율적이었다. 놀랍게도.


그가 곁에 았었을 때도 더러더러 꽃을 좀 사다 놓았더라면. 그래서 그 꽃들을 돌보는 핑계로라도 늦잠을 자지 않았더라면 2022년 4월 8일 아침의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가끔 그런 생각에 슬퍼질 때가 있다. 해 봐야 아무 소용없는 생각인 것을 모르지도 않으면서도.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리스는 처음이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