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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Nov 26. 2024

신발끈이 풀리면

-364

꾸미는 것 따위와는 별로 상관없이 살아온 사람답게 나는 구두를 잘 신고 다니지 않는 편이다. 뒤축이나 발가락이 쓸리는 것도 싫고 조금만 걸었다 하면 발바닥에 불이 나는 것도 싫고 그러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종아리가 잡아 뜯듯이 아픈 것도 싫고 구두를 신어야만 어울릴 정도의 드레시한 복장을 하고 다니지도 않는 까닭이다. 그래서 무난한 운동화나 서너 켤레 사다 두고 그때그때 눈치껏 이리저리 돌려 신고 있다.


어제 신고 나간 운동화는 그가 몇 년 전 내 생일 선불로 사 준 것이다. 운동화라기에는 브릭 같은 느낌의 재질이 독특하고 예뻐서 당신은 어디서 이런 희한한 물건을 잘도 찾아온다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이 운동화는 무려 디자인 컨셉이 한복 저고리라고 한다. 그래서 끈을 매는 부분의 디자인이 약간 한복 저고리를 여미는 부분과 비슷하게 생기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운동화 끝이 보통의 운동화 끈 같은 넓적한 재질이 아니라 동그랗게 말린 좀 예쁘고 특이한 끈으로 되어 있다. 다만 이 운동화의 가장 큰 단점은 저 예쁜 끈의 길이가 좀 짧아서 손재주 없는 나로서는 좀체로 꽉 묶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운동화를 신고 나간 날은 중간에 반드시 신발끈 매는 타임이 생긴다.


어제는 아예 나가기 전, 1층 엘리베이터를 내리고 나서 바로 나름 있는 힘껏 신발끈을 야무지게 묶었다. 그러나 그런 보람도 없이 왼쪽 신발끈이 어딘가 허술해졌다는 느낌이 슬금슬금 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일을 다 마치고 그의 봉안당에 들렀다가 나온 입구에서 아예 매듭 자체가 풀어져 신발끈 두 쪽이 다 걸음걸음마다 휘적휘적 나부끼고 있어서 만사 제쳐놓고 손에 들었던 모든 걸 옆에 부려놓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다시 신발끈부터 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휴, 누가 도대체 내 생각을 이렇게 애달프게 하시나 그래. 이런 말을 주워섬기며 있는 힘껏 매듭을 묶고, 제발 좀 풀리지 말라는 염원을 담아 한 번 더 야무지게 세게 묶었다. 그 덕분인지 그 후로 집에 올 때까지는 신발끈이 멀쩡했다. 다음번에 또 신고 나갈 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요즘 인터넷에는 별의별 것이 다 올라오는데 신발끈 안 풀리게 묶는 법 같은 것도 찾아보면 좀 올라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신발 사주면 그 신발 신고 도망간다는데? 하고 농담을 했더니 도망갈만 하니까 갔겠지 하는 재미없는 대답을 하기에 입을 삐죽거렸던 기억이 있다. 다 늙어서 도망가봤자지 정도의 그렇고 그런 대답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말랑한 대답이 나와버려서 내심 좀 당황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보니 그때 그 말이 내가 도망간다는 게 아니라 신발 한 켤레 사줘 놓고 자기가 도망가겠다는 이야기였나 보다 하고는 또 뒤늦게 애꿎은 사진 액자에다 대고 눈을 흘긴다. 그렇게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 놓고 신발끈 따위 풀리게 만들어봤자 하나도 감동적이지 않다는 투덜거림은 덤이다.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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