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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8월쯤, 장마철 혹은 기상청의 기준으로는 장마가 아니지만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난 국지성 호우로 미친 듯이 비가 퍼부을 때 우리는 별생각 없이 '하늘에 구멍이라도 났나' 하고 말한다. 그리고 이 표현은 대개 여름철 한정이다. 여름에 갑작스레 비가 쏟아질 때가 아니면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려서 그 속에 있던 것들이 일시적으로 다 쏟아져내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일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나는 지난 이틀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무슨 첫눈이 이렇게 무드 없이 오느냐고 징징거린 며칠 전 글에 한술 더 떠서, 지금 무드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는 듯 내가 사는 지역 인근에는 숫제 대설 경보가 내렸다. 핸드폰으로 온 알림 문자를 볼 때까지만 해도 또 기상청 오바한다고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그게 그럴 일이 아니었다. 우체국에 뭘 좀 부치러 가야 해서 잠시 나갔다 왔는데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한 5분 사이에 머리며 어깨 위로 눈이 쌓여 무슨 눈사람 같은 몰골로 집에 돌아왔다. 그렇게 시동을 건 눈은 그야말로 그제 하루 종일 내리고, 어제도 점심 먹기 전까지는 내내 내렸다. 아니 무슨 눈이 이렇게 하루 종일 와? 이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기억도 채 나지 않을 정도로. 해가 지고 난 후 창문을 닫아도 내린 눈들 때문에 창문 밖이 훤해서 좀 낯선 기분이 들었다.
겨울이 오면 몇 번 정도 대대적으로 눈이 내려 온 나라가 난리가 나는 일은 더러 있는 일이다. 그러나 12월도 되지 않은 11월에 이런 눈 폭탄을 맞은 적이 있긴 하던지. 요컨대 아직 준비도 채 되지 않은 와중에 덮친 이 폭설에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다. 아침에 버스가 안 다녀 회사에 못 갔다는 지인도 있었고 학교에서 지각을 인정해 주지 않아 결국 결석 처리가 되고 말았다는 분도 있었다. 나 또한 급한 물건 몇 가지가 배달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장 보는 스케줄을 며칠 후로 미뤄야 했다.
이렇게 요란하게 스타트를 끊은 올해 겨울(사실 아직 온전히 겨울이 왔다는 실감도 잘 나지 않는데)에는 또 몇 번이나 이렇게 '하늘에 구멍이 뚫리는' 모습을 보게 될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이젠 여름에 태풍 걱정 물난리 걱정을 하는 것처럼 겨울에 눈 난리 걱정도 해야 하는 것일까. 어디서 들으니 지구 온난화로 바닷물의 수온이 높아져서, 거기서 생긴 수증기가 우리나라 상공의 찬공기에 맞닥뜨리는 바람에 급작스레 폭설이 내린 거리던가 하는 말이 있었다. 어쩌면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하늘에 구멍을 내고 있는 건 우리 인간들 자신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