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걸 과연 첫눈이라고 부르는 것이 온당한가 싶을 정도의 폭설이 펑펑 내리던 아침이었다.
오늘도 이불 밖으로 나가서 또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부질없이 몸부림을 좀 치다가, 할 수 없지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나처럼 이불을 걷어내고 패드를 새로 깔고 베개를 털어 다시 놓고 하다가 불쑥 전기장판을 꺼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2월 지나고 나서야 틀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했지만 어차피 하루 이틀 지나면 12월이고, 정 신경 쓰이면 미리 깔아만 놓고 트는 건 12월에 틀면 될 거 아니냐고, 일단 꺼내기로 마음을 먹으니 핑계는 일사천리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나는 하던 정리를 전부 작파하고 다짜고짜 장롱으로 가서 좀 두거운 패드와 전기장판을 꺼내고, 꺼내는 김에 겨울 이불도 꺼내고, 또 꺼내는 김에 무릎 담요까지를 세트로 왕창 다 꺼내 왔다. 그리고 매트리스 위에 새로 꺼낸 두꺼운 패드를 깔고 그 위에 전기장판을 펴고 원래 깔던 얇은 패드를 한 겹 더 깔고는, 새로 꺼내 온 겨울 이불도 깔았다. 그렇게까지를 다 해놓고 보니 순식간에 월동 준비가 후다닥 끝나 있었다.
타이밍 좋게 기온은 점점 더 떨어졌다. 결국 나는 '꺼내만 놓고' 쓰는 건 다음 달이나 돼서야 쓰겠다고 마음먹었던 무릎담요를 주섬주섬 펼쳐서 무릎 위를 덮고는 아 이렇게 따뜻하고 좋은 걸 누구 보라고 안 쓰고 미련을 떨었던가 하고 스스로를 타박했다. 그러나 그러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래도 전기장판만은 웬만하면 12월 들어가면 켜자는 부질없는 미련을 부렸다. 그런데 잠깐만. 전기장판을 근 1년 가까이 장롱 속에 접은 채로 처박아놨다 꺼냈으니 그 사이에 분량이 생겨서 불이 안 들어올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전지장판의 온도 조절기를 끼우는 조인트 부분이 좀 뻑뻑해서 그게 잘 꽂혔는지도 조금 의심이 가기도 했다. 시운전이다 생각하고 잠깐만 켜놔 보기로 했다.
그렇게 딱 10분 정도를 켜 두었다. 그리고 이불 안으로 손을 넣어 만져보니 따뜻한 온기가 마치 약이라도 올리듯 한가득 올라와 있었다. 내 어설픈 오기는 그 순간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12월 1일이나 11월 28일이나 무슨 차이가 있다고. 게다가 오늘 새벽 최저 온도가 영하 5도까지나 떨어진다잖아. 이런 날 안 켤 거면 전기장판은 왜 샀대. 결국 나는 며칠간 부득부득 부린 미련이 무색하게도 결국 12월이 되기 전에 전기장판을 개시했다. 그리고 따끈따끈하게 덥혀진 침대에 들어가 며칠 만에, 추운 새벽에 웅크리지 않고 아주 푹 잘 자고 일어났다.
창밖을 쳐다만 봐도 쌓인 눈 때문에 추워지는 날씨다. 이럴 때 안 켜는 전기장판 따위가 무슨 필요가 있냐고, 그저 따뜻하게 잘 자고 잘 일어났으니 됐다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 괜히 머쓱해서 그렇게 중얼거려 본다. 눈이 이렇게나 오는데 전기장판은 12월 되면 켜겠다니, 도대체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그러고 살 거냐는 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