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사다 두면 오래가는 꽃이라고 국화를 몇 번이나 찬양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정말로 오래가는 꽃은 따로 있다. 언젠가 한 번 글에 언급한 적이 있는 스타티스라는 꽃이다. 대충 보면 알록달록한 안개꽃처럼도 보이는 이 꽃은, 그러나 대단히 줄기가 튼실하고 꽃 자체가 별로 물기가 없이 건조해서 2, 3주 정도는 그야말로 우습게 난다. 심지어는 줄기가 변색돼 시들어가는 기색이 역력한데도 꽃만은 멀쩡해서, 정말로 꽃이 시들어서가 아니라 내가 보내주는 느낌으로 다른 꽃으로 바꿔 꽂은 기억이 있는 그런 꽃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두 번 연속으로 유찰꽃을 샀다. 유찰꽃 상품은 의외로 자주 나오지 않는데 이번에는 두 번 연거푸 나오기도 했고, 앞전의 아이리스 때문에 이번엔 또 무슨 생각 못한 꽃이 오려는지 기대하는 심리가 조금 생겼기 때문이다. 이번 유찰꽃의 메인이벤트는 아마 큰 것으로 두 송이가 핀 백합인 모양이었다. 그 외에 익히 아는 장미와 소국이 조금,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보는 짙은 핑크색 스타티스가 몇 대 들어 있었다. 이번 꽃들은 하필 한참 눈 오고 추운 날에 집에 도착한 녀석들이라, 아이고 이 추운 날 고생했다고, 먼 길 온 손님이라도 대하듯 서둘러 꽃병에 꽂아서 따뜻한 방 안으로 모셨다.
그렇게 이틀 정도가 지나고 나니 스타티스의 핑크색 꽃 위로 무언가 이중으로 흰색의 아주 조그만 꽃망울 같은 것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게 뭔가, 하고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 흰 부분이 스타티스의 진짜 '꽃' 부분이고 지금껏 내가 꽃인 줄로 알고 있던 더러는 보라색이고 더러는 노란색이고 이번에 온 녀석은 핑크색이던 부분은 포엽이라고 해서, 일종의 꽃을 보호하는 변형된 잎의 한 종류라는 모양이었다. 아 그러니까 지금껏 내가 꽃인 줄 알고 있던 것이 꽃이 아니었다는 이야기구나. 사실 이런 꽃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여름 기어이 나를 마음 상하게 했던 그 수국 또한 우리가 꽃이라고 인식하는 널찍한 부분은 포엽이고 진짜 꽃은 그 가운데 아주 조그맣고 동그랗게 핀다. 스타티스를 사다 놓은 것이 벌써 몇 번이나 되었는데도 진짜 꽃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서 하얗게 올라온 그 올망졸망한 꽃들을 보고 있었다.
사는 게 너무 즐겁고 신나고 행복하고,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행복한 날이 우리 사는 날 중에 며칠이나 되던지. 우리는 대개 죽지 못해 살고, 뭔가 좋은 일이 생기기보다는 나쁜 일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산다. 이런 하루하루는 참 재미없고 가끔은 끔찍하지만, 어딘가에 '진짜 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세상은 아주 조금이나마 살만해지는 것 같다. 예전 어느 드라마에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절망하는 손녀에게 할머니가 해주시던 모든 꽃은 피는 시기가 따로 있고 네 꽃은 조금 늦게 필뿐이라던 그 말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