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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그러니까 어젯밤 10시 30분을 조금 넘었을 때의 일이다. 지인분이 카톡을 보내셨다. 밑도 끝도 없이 큰일 났다는 말만 덩그러니 적혀있어서, 요즘 유행한다는 카톡 피싱인가 했다. 뉴스 좀 봐봐요, 그 말에 텔레비전을 틀었다. 그리고 잠시 멍해졌다. 비상게엄이라니.
영화 '1987'은, 그 내용을 죄다 속속들이 '알고' 있기에는 당시 나는 좀 어렸다. 다만 한 가지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이 있다. 그 최루탄 냄새다. 도대체 뭐가 문젠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도 모른 채로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 나던 이루 말로는 다 형용할 수 없는 매캐한 냄새에 눈물 콧물을 다 짜며 집으로 돌아왔던 그해 여름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비상계엄이라는 그 네 글자를 보는 순간 당시의 그 최루가스 냄새가 훅 다시 끼쳐오는 기분이 들었다.
텔레비전을 틀어놓았으나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아서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SNS 페이지들만 끝도 없이 새로고침하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건지, 지금은 1980년대도 아니고 2천년 하고도 24년이나 지났는데. 심지어 한 달만 있으면 25년인데. 이런 시절에 비상계엄이 웬 말인지. 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여기저기 전화라도 돌려봐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전화해서 무슨 말을 할 거냐 싶어졌다가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그러던 와중에 벌써 서울 도심지로 탱크며 장갑차가 진입했다는 소문이 술렁술렁 퍼지기 시작했다. 이거 진짜 큰일 나는 거 아닌가.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 불문곡직 국회의사당 앞으로 뛰쳐나간 시민들을 보고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러고 보면 언제나 이 나라를 지켜왔던 것은 잘나신 윗분들이 아니라 말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듯도 싶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일단은 기다려 보자. 그 생각을 하며 녹차 한 잔을 내려왔다. 그러나 애써 침착한 척 그렇게까지 해 놓고도 담가놓은 찻잎을 건져내는 것을 잊어버려 녹차는 매우 떫은맛을 내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를 이게 다 뭐며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하는 혼란 속에서 보냈다. 그리고 새벽 한 시가 조금 넘었을 때쯤, 국회에서 계엄 해제가 가결되었다는 뉴스가 떴다. 일단은 다행이다 싶었다. 그다음으로는 이 연말에, 이 야밤에 이게 무슨 생난리인가 하는 생각에 벌컥 화가 치밀었다. 아니 내일 뻔히 출근하고 학교 가야 하는 국민들 생각은 요만큼도 안 하나. 아닌 게 아니라 당장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내일 시험 치는데 자기는 틀렸다는 글들이 인터넷 여기저기에 올라와 있었다.
지난 대선은 그가 떠난 지 거의 한 달 만에 치러졌다. 그래서 그는 이번 대통령이 누가 되는지를 보지 못하고 떠났다. 어젯밤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혼자가 아닌 둘이었다면 조금은 덜 혼란스러웠을까. 참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고,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네 하고 그의 사진 액자를 향해 힘없이 웃었다. 조금 혼란스럽고 무서운 밤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래서 여쭙는다. 간밤에 다들 잠들은 좀 주무셨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