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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일 관련으로 다음 주에 부산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그와 나는 둘 다 고향이 부산이다. 우리는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부산에서 살았고, 그 이후로 위쪽으로 올라왔다. 그도 나도 부산을 좋아했다. 부산의 바다를 좋아했고 버스를 타고 산복도로를 달리는 것을 좋아했으며 소소한 추억이 남아있는 구 도심의 뒷골목들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렇게 좋아한 부산을, 우리는 두고 떠나온 이후로는 그리 자주 가 보지 못했다. 비행기까지는 오버라도 KTX도 모자라 SRT도 있고, 버스를 타도 네다섯 시간만 들이면 갈 수 있었지만 언제나 마음뿐이고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다 한 번 일 핑계로 부산에 가야 할 일이 생기면 그 일정은 출장이 아니라 여행으로 곧잘 변질되곤 했다. 우리는 전날 밤을 거의 새다시피 하고 새벽에 집을 나섰다. 새벽 고속도로변의 휴게소에서 대충 끼니를 때운 후 아침나절에는 부산에 도착했고 그때부터는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가며 정해진 시간 안에 한 군데라도 더 가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떠나기 전에 살던 동네도 가 보고 싶었고 주말이면 데이트를 하던 남포동 골목들도 가보고 싶었다. 지금은 블록 하나 정도로 줄어들어버린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도 가봐야 했고 밤이 오면 우리가 부산에 살 때는 없었던 광안대교의 야경도 봐야 했다. 자갈치 시장에 가서 꼼장어도 먹어봐야 했고 원산면옥의 비빔냉면도 먹어봐야 했다. 그 모든 퀘스트들을, 언제나 다시 오게 될지 모르니 가능한 한 많이 수행해야 했다. 그래서 거의 무박 2일에 가까운 강행군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앞뒤 가리지 않고 쓰러져 한숨 자고 일어나야 했다. 아마 이번 출장 또한 그가 내 곁에 있었더라면 그랬으리라.
출장 스케줄이 잡힌 후, 나는 더없이 무덤덤하게 코레일 사이트에 접속해 차표 두 장을 예약했다. 미팅이 두 시여서 당일 아침 10시쯤 출발하는 하행 차편 하나와 저녁 여섯 시쯤에 출발하는 상행 차편 하나였다. 더 빨리 돌아오는 기차가 있었다면 그것을 예약했을 것이다. 몇 년 만에 가는지 기억도 채 나지 않는 부산에 갈 기회가 생겼지만 나는 그냥 약 다섯 시간 만에 미련 없이 부산을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한 시간 정도는 미팅을 할 테니 내가 부산에서 쓸 시간은 고작 네 시간뿐이다. 그 네 시간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차 시간이 애매해 점심을 먹지 못하고 미팅을 하게 될 테니 밥을 좀 먹어야겠고, 그 시간까지 빼고 나면 부산까지나 가서 바다 한 번 볼 시간도 없이 돌아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우스울 만큼 아무렇지 않았다. 수백 Km 넘게 떨어진 곳에 가면서, 매주 월요일 심리 상담을 받으러 버스로 대여섯 정거장 떨어진 곳에 갈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런 기분이었다. 더 이상 내게는 해운대 바다도, 광안대교도, 부산이라는 도시에 20여 년을 묻어놓은 지난 시간들도 아무 의미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다음 주에 출장을 갈 때는 그의 사진을 가지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바다라도 한 번 보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에게도 부산의 바다를 보여주고 싶으니까. 혼자 남아있지만, 그래도 나는 그럭저럭 이를 악물고 잘 버티고 있다고, 그런 말을 해 주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