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한 편씩, 낙서하듯 일기 쓰듯 올린 글 조각이 오늘로 80개째가 되었다. 19세기에 발표된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 식으로 말해도 세계일주를 한 번 할 수 있는 시간이며, 요즘이라면 지구에서 화성까지 가는 데 7개월쯤이 걸린다고 하니 그 절반 정도를 갈 수 있는 시간이다. 그렇게, 시간은 아닌 듯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나는 내 글을 사랑해 본 적이 별로 없다. 글을 쓴 시간 내내 나는 글에게 어장관리를 당하며 살았다. 내게 글은 그지없이 냉담하고 쌀쌀했으며, 그러다가도 내가 저를 놓아버리려고 하면 마지못해 한 번 던진 추파로 내가 마음을 접을 수도 없게 만드는 드라마 속 나쁜 남자 같은 존재였다. 언제부턴가 나는 글을 놓는 것을 포기했다. 성과가 있든 없든, 그걸로 뭔가를 할 수 있든 없든 나는 뭔가를 끄적이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대신 나는 내 글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결국 아무것도 구원해주지 않을 거면서 내 옆에서 떠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내 글이 나는 가끔 못 견디게 미웠다. 그래서 가끔 그런 막말을 하기도 했다. 손모가지라도 잘라버리면 이까짓 글 다신 안 쓸 수 있을 텐데.
그리고 그런 걸 두고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하는 건지, 내 평생의 반려였던 그가 훌쩍 떠나가고 난 자리에 남아 나를 버티어주고 있는 건 결국 악우(惡友)라고나 해야 할 내 글이다.
지나간 80일간 쓴 글들을 가끔 처음부터 읽어볼 때가 있다. 그중에는 제법 마음에 들게 쓰여진 것들도 없진 않지만 꼭 그만큼 이런 글을 무슨 정신으로 사람들 다 보는 데다가 썼을까 싶은 글들도 있고 넘쳐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읽다가 낯이 뜨거워지는 글들도 있다. 그 속에는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겪고 어떻게든 나 자신을 놓아버리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 지난 석 달 남짓의 시간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래서 더러는 봐줄 만하고 더러는 낯이 뜨거운 지난 글들을 읽으면서 나는 한 가지만을 확신하게 된다. 아마 매일 아침 일어나 침대를 정리하고 청소를 한 후 브런치에 글 한 자락을 끄적이는 이 30분 남짓한 순간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지금 나는 이 자리에 있지 못할 수도 있었겠구나 하고.
매일 아침 떠난 사람을 잊지 못해 눈물 짜는 이 청승맞은 글을 계속 쓰면서 가끔 생각한다. 나 삶만도 버겁고 내 인생만도 힘에 부친 이 세상에 남의 청승 떠는 이야기 같은 걸 좋아해 줄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고.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매일 아침 이 구질구질한 이야기들을 계속 쓰고 있는 건 아마도 이 글들이 본질적으로 '쓰고 싶어서' 쓰는 글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죽은 황후를 위해 타지마할을 지은 인도의 황제만큼 부유하지도 않고 신들조차 눈물짓게 만들어 결국 잠깐이지만 아내를 저승에서 데리고 나오는 데 성공했던 오르페우스 같은 재능도 없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내가 껴안고 있는 그에 대한 기억들이 사라지기 전에, 이런 남루한 글 조각들 속에 서투르게나마 박제해놓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런 '어디까지나 남의 일'에 잊지 않고 찾아와 주시는 눈에 익은 독자님들께는 그자 감사드릴 따름이다.
이제 7월이다. 빈말로라도 여름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는 계절이 되었다. 그를 떠나보내고, 나는 계절 하나를 넘기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도 조금 더 힘을 내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