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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떠나간 것은 2022년 4월이었다. 코로나 사태가 완전히 진정되기 전이어서 부검이 매우 많이 밀려 있고, 그래서 일정이 언제나 잡힐지도 알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다가 갑작스레 빈 일정이 생겼다며 다음날 아침 일찍 부검을 하게 되었다고 경찰서에서 연락을 받았다. 유족은 원한다면 부검을 참관할 수 있지만 가는 것을 그리 추천드리지는 않는다고 형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굳이 참관하시겠다는 분들이 계셔서 몇 번 모시고 가 본 적이 있지만 그렇게 참관하러 간 분들 대부분은 결국 부검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중간에 도망치듯 자리를 뜬다고 했다. 그리고 그 장면이 꽤나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아 고생을 한다고 했다. 이런 말 어떻게 들으실지는 모르지만 산 사람은 또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부군께서도 그런 모습까지 부인에게 보이고 싶지는 않으실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에 덜컥 무서워졌다. 그래서 나는 결국 그의 부검을 참관하지 못했다.
어제는 토요일 밤까지 미처 마무리짓지 못한 일이 있어 오전 내도록 정신이 없었다. 대충 마무리를 지어놓고 한숨을 돌리려는데 SNS에 심상찮은 기사 하나가 돌기 시작했다. 무슨 비행기 추락사고 운운 하는 제목만 보고도 머리가 어지러웠고 속이 메슥거려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언제던가, 그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다가 인천에서 출발해 진도로 가던 여객선이 침몰했지만 다행히 탑승객 대부분이 무사히 구조되었다는 속보를 보던 기억, 아니 그런데 저거 숫자가 안 맞잖아 하고 말하던 그의 목소리, 그리고 그 대수롭지 않던 속보가 사상 최악의 끔찍한 오보로 판명나기까지의 모든 순간들이 몇 번이나 봐서 대사를 죄다 외워버린 영화처럼 머릿속에서 되살아났다. 너무 무서워서 관련된 기사들을 단 하나도 읽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기사 타이틀만으로도 대충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200명 가까운 탑승객 중 생존자는 겨우 두 사람. 나머지 대부분의 분들이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 같았다.
정작 왈칵 눈물이 쏟아진 지점은 그다음이었다. 시신의 상태가 참혹하다는 소방관들의 말과, 유가족들이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그것이었다. 아, 세상에. 이쯤에서는 넋을 놓지 않을 수 없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난 가족이 귀갓길에 사고를 당해 돌아오지 못하게 된 것으로 모자라 그 참혹한 모습을 직접 보고 신원을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니. 2년 전 그때 사람 하나를 떠나보내며 겪을 수 있는 모든 슬픔을 다 겪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또한 오만이었구나 하고 다시금 깨닫는다. 그리하여 싫어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나를 보호하려 했다는 것을. 거기서 내가 더 슬퍼질 수 있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었으며, 그는 그래도 가기까지는 가지 않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도 무던히 애썼으리라는 것을.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참을 수 없을 만큼 눈물이 쏟아져서 제법 오랜만에 한참이나 티슈를 몇 장이나 적시도록 흠뻑 울었다.
이번 제주항공 2216편 사고로 돌아오지 못하신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빌며 그 유가족분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올해 연말은 왜 이다지도 아프고 슬픈 일들만 자꾸 일어나는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