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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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며칠 전부터 뭔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은 매우 불쾌한 기분이 순간순간 들어서 슬그머니 짜증이 나던 참이었다. 그게 도대체 뭐에 연관된 일인지조차 실마리가 잡히지 않아 한참이나 곰곰이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뭐 급한 일 아니니까 안 생각나겠지 하고 제풀에 그만두기를 며칠이나 거듭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어제 오전쯤에야 나는 내가 며칠째 잊어버리고 있던 일의 정체를 기억해 냈다. 새해 달력을 미처 준비해 놓지 못했던 것이다. 탁상 달력은 아쉬운 대로 몇 개 생겼지만 벽에 걸어둘 달력은 몇 년 전부터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고양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할아버지의 일러스트가 그려진 달력을 사다 걸어놓고 있는데 그 달력을 사놓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어쭙잖은 핑계를 대자면 딱 달력을 장만할 그 무렵에 비상계엄 운운 하는 일이 터지는 바람에 넋이 반쯤 나가 버린 탓이 크겠다.


핸드폰으로 달력을 주문하며 내심 올해는 시작부터 새 달력도 걸어놓지 못하고 스타트를 끊고 말았구나 하는 생각에 내심 찜찜해졌다. 뭐 그래도 오늘 주문했으니 내일쯤에는 오겠지.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웬걸, 아침 11시가 조금 넘어 주문한 달력은 정확히 어젯밤 아홉 시 30분에 집 앞으로 배송완료했다는 문자와 함께 집으로 도착했다. 문자를 받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달력을 주문한 서점 사이트에서는 배송일 지정을 할 수가 있었고,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겼는데 당일배송 운운하는 문구가 적혀 있던 것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택배 상자를 뜯고 안에 든 달력을 꺼내 벽에 걸며,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떨떠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까지 할 일이었을까.


물론 그렇다. 내 돈 주고 산 물건이 빨리 오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다. 인터넷으로 사는 것이 조금 더 싸다는 것을 모르지도 않으면서도, 지금 당장 손에 쥐고 싶은 욕구를 못 이기고 굳이 직접 뭔가를 사 오는 경우도 없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오늘 주문한 물건은 으레 내일, 가끔 물류가 밀리면 모레쯤 온다는 사실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데. 급하지도 않은 달력을 열 시간 남짓만에 받고 보니 어째 몹시 불편한 기분이 되었다. 본의 아니게 누군가의 필요 이상의 노고에 한 숟가락을 얹어버린 듯한 그런 기분이었달까.


주 7일 택배 운운하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아, 그거 좀 안 그러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내게도 꼭 필요한 물건이 주말을 끼고 배송이 넘어가버려 발을 동동 구른 기억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건 또 그렇게 어찌어찌 지나갈 일이지 그 흔치 않은 몇몇 순간을 위해 일주일 내내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한다는 건 과연 옳은 일일까. 당장 나부터도 책을 살 때는(가만 보면 이런 지나치게 빠른 배송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 서점 쪽인 것 같다) 굳이 당일 배송으로 주문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루 이틀쯤 기다려서 받는다고 무슨 큰 일이라도 일어나는 건 아니니까.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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