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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정비결은 흔히 어지간하면 좋은 말만 해주는 것 정도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의외로 그렇지는 않다. '어지간하면 좋은 말만 해주는' 토정비결은 신년 이벤트로 무료 운세를 봐준다고 하는 보험사나 은행 사이트 등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들인 경우가 많고 이런 서비스에서는 그야말로 읽는 사람이 기분 상할 말은 웬만하면 하지 않기 때문에 이래도 저래도 좋은 말만 나온다. 조금만 각을 잡고 찾아보면 토정비결에는 의외로 안 좋은 결과도 적지 않게 있다. 토정비결의 결과는 총 144가지인데 그중에 좋은 괘는 절반도 안 되는 50개뿐이며 심지어 10분의 1 정도인 14개는 아주 좋지 않은 괘다. 이렇게 놓고 보면 '어지간하면 좋은 말만 해주는' 점은 아닌 셈이니 역으로 좀 신뢰가 가지 않나 싶기도 하다.
작년의 내 토정비결이 그랬다. 작년 내 토정비결 괘는 '유불안정지의'라는 괘로 상기한 14개의 아주 좋지 않은 괘까지는 아니지만 '대체로 불운'에 속하는 50개 중의 하나다. 일단 첫 말부터 평지풍파에 속수무책 운운,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데 뾰족한 방법도 없다는 김 팍팍 새는 말들로 시작하는 괘를 읽어보고 괜히 기분이 상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뭐 그런 걸 바넘 효과라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작년 내 한 해는 썩 뜻하는 일들이 잘 이루어지지는 않은 해였다. 그나마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씩 나아진다는 말이 위안으로 느껴질 정도로.
못내 억울한(!) 생각이 들어 내년, 그러니까 올해 토정비결을 미리 봤다. 그랬더니 정 반대로 매우 좋은 괘가 나왔다. 그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조금 마음이 풀려서, 그래 올 한 해 눈 질끈 감고 넘어가 보자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이제 해가 바뀌었고 운 안 좋은 작년 한 해를 어떻게든 큰 사고 없이 잘 버텨냈으니 올해는 나름 좋은 일만 생기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가끔 보는 운세 어플로 올해의 초정비결을 눌러봤다. 그러나 어플이 뱉어낸 토정비결 결과는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야말로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운세이니 조심하고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는 김 팍팍 새는 말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아니 이거 왜 이러냐고, 얘기가 다르지 않냐고 한참이나 볼이 부어 투덜거리다가, 나는 토정비결에 적혀 있는 월별 날짜가 올해와 조금 다른 것을 발견했다. 아하, 그러니까 아직 음력으로는 해가 바뀌지 않았고, 그래서 이 어플은 그에 맞게 '작년의' 토정비결 결과를 내놓았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올해 설날은 1월 29일인데 어플의 설날은 2월 3일로 표시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입을 삐죽거리며 어플을 껐다.
올해 내 토정비결 괘는 '안정유복지의'라고 한다. 벌써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신수가 대길하니 반드시 기쁜 일이 있는 괘라고 한다. 올해는 제발 좀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겨서, 봉안당에 그를 보러 갈 때마다 매번 징징대는 소리만 늘어놓다 오게 되는 이 달갑잖은 루틴 좀 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