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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마트에 장을 보기 전에 사다 놓은 라면들을 체크해 보다가 구석에 처박혀 있던 비빔면 하나를 발견했다. 아차차. 이것도 유통 기한이 지난 12월 중순까지였으니 어영부영 한 달이 지나간 셈이었다(어째 그리 짧지도 않은 라면의 유통기한 넘기는 이야기를 너무 자주 쓰고 있어서 제풀에 좀 민망해지기도 한다) 다만 이 비빔면을 해치우기 위해서는 같이 먹을 뭔가가 반드시 필요한 바 이걸 어떡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제육볶음이나 해 먹으려고 사다 둔 앞다리살이나 조금 구워서 같이 먹기로 했다. 보통 때는 삼겹살이나 목살 정도를 구워서 이런 식으로 먹는 편이지만 그것 한 팩 사자고 나가기에는 이번 주말은 너무 추웠다.
다만 그렇다. 앞다리살을 이런 식으로, 소금에 후추 정도나 달랑 뿌려서 구워서 먹어본 기억이 내게는 거의 없다. 이렇게 생으로 구워서 먹는 고기는 삼겹살과 목살이었고 앞다리살은 찌개 끓일 때는 수육을 해 먹을 때 썼다. 이건 내가 뭘 알고 그렇게 해 온 것이 아니라 그가 하던 식의 고기 분류법이었다. 앞다리살도 썩 괜찮고 특히나 국산 돼지고기쯤 되면 사실 삼겹살에 손색없다는 말을 텔레비전에서 많이 듣기는 했지만 또 막상 정말로 그럴지, 잠깐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뭐 돼지고기가 다 돼지고기지. 결국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양념을 직접 하진 않을 거지만 매콤한 양념이 된 비빔면이랑 같이 먹을 거니까, 그리고 별로 까다롭지도 않은 내 입맛에는 별로 큰 문제 안 되지 않을까. 그래서 그냥 눈 딱 감고 앞다리살 400그램짜리 한 팩을 전부 다 구웠다. 그리고는 머뭇거리던 것이 민망할 정도로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생각해 보면 좀 그런 느낌은 있다. 예전에 이렇게까지 비싸지 않던 삼겹살 가격이 슬금슬금 올라 소고기와 비슷한 가격이 되고부터 삼겹살을 대체하는 용도로 목살이 핫해졌고, 그러던 목살마저 또 슬금슬금 가격이 오르고 있지 않던지. 가끔 뭔가 '목에 기름칠'을 좀 하고 싶은데 삼겹살도 비싸고 목살도 비싸다 싶은 날에는 앞다리살로 대체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몇 번 말한 것 같지만 우리 집 근처의 마트는 나름 인근의 축협과 연계가 되어 있어서 앞다리살 정도는 꽤 세일도 자주 하는 편이기도 하고.
물론 이건 나니까 할 수 있는 생각이고 그가 있었더라면 어떻게든, 그래도 좀 더 맛있는 목살이나 삼겹살 선에서 '쇼부'를 보려고 애썼을 거다. 그런 고민들이, 가뜩이나 길지 않았던 그의 시간을 얼마쯤 태워먹어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젠 다 소용없는 이야기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