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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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이 브런치에 글을 쓸 때는 '무슨 이야기'를 쓸 건지를 제일 먼저 생각한다. 새로 산 꽃 이야기를 할지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라면 이야기를 할지 오늘 마신 커피 이야기일지 가끔 가던 빵집이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일지 뭐 그런 것들이다. 그게 결정되면 제목을 달고 부제(라기에는 그냥 단순한 넘버링에 불과하긴 하다)를 붙이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물론 제목은 마땅한 제목이 영 떠오르지 않아 빈칸으로 내버려 뒀다가 글을 다 쓴 후에 붙이는 변칙도 더러 있긴 하다.


글을 다 쓰고 발행하기 전 키워드를 붙인다. 브런치 에디터는 대개 글의 내용을 자동으로 분석해서 몇 가지 키워드를 추천해 주긴 하는데 대개는 그냥 많이 쓰이는 단어를 골라 내놓는 수준이어서 별로 참고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내 글의 키워드는 언제나 세 가지-일상, 이별, 죽음이라고 달린다. 이것은 3년 전 4월 브런치에 첫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일종의 의식이다.


본래 이 브런치의 개설 목적은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떠나버린 이후에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던 나 스스로를 붙잡기 위해서였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 한동안 나의 모든 생활과 상념은 죄다 그의 부재로 향해 있었으므로 그때는 그런 키워드를 다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 들어 가끔 이 키워드가 썩 적절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에 가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혼자 본 영화 이야기를 쓸 때도, 미팅을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맛있는 밥집 이야기를 쓸 때도, 새로 산 전기장판 이야기를 쓸 때도 내 글의 키워드는 언제나 저렇게 달린다.


일상까진 그렇다 치는데 이별과 죽음과는 전혀 관계없는 글을 쓰면서도 키워드는 늘 그 모양으로 다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키워드라는 건 어쨌든 글을 찾거나 읽으시는 분들의 인덱싱을 돕기 위해 다는 것인데 이렇게 글의 내용과 하등 상관없는 키워드를 달아놔도 되는 것인지 하는 생각에서다. 아무리 이 브런치가 그냥 남들 다 봐도 상관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공개 일기장 정도에 불과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두서가 없을 일인가 하는 생각을 글을 쓰다 보면 하지 않을 수 없다. 일상이야 또 그렇다 치지만 이별이나 죽은은 꽤나 무겁고 아픈 키워드여서 뭔가 마음의 위로라도 구하러 오셨던 분들에게 너무 잡스러운 글들을 보여드리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하고.


사실은 그래서 몇 번이나 그때그때 글의 내용에 맞는 것으로 키워드를 고쳐 달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해 봤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막상 발행 버튼을 눌러야 하는 순간이 오면 나는 또 습관적으로 늘 달던 일상, 이별, 죽음이라는 키워드를 달고 만다. 어쩌면 나는 이 브런치를 아주 멀리 출장 가 있는 그에게 보내는 편지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서, 그의 이야기가 담기지 않는 글조차도 그가 읽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쓰고 있기 때문인 건지도 모르겠다.


hashtag-e1548195632820.jpg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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