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입에 발린 말로라도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여름이다. 날은 덥고 습하고, 잊을만하면 한 번씩 스콜에 가까운 소나기가 오고, 그래서 잠시 동안만 집을 비우려고 해도 꼬박꼬박 창문을 다 닫고 나가야만 안심이 되는 그런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막연하게 여름이면 식물이 잘 자라는 계절쯤으로만 생각하던 나는 요즘의 이 변덕스러운 날씨에 팔자에 없는 화분 둘을 시중 드느라 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바깥에 내놓고 비도 맞히고 볕도 쬐게 하면서 키우면 참 좋을 텐데, 우리 집은 구조상 그게 쉽지 않다. 실외기 위쪽으로 가드닝 박스라도 하나 짜서 좀 내다 놓고 싶었지만 강풍이 불거나 폭우가 쏟아져도 화분을 거기다 계속 둬도 될 것 같지는 않고, 그때마다 집 안에 들이는 것도 일이다 싶어서 실행하지는 못하고 있다. 덕분에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동쪽으로 난 창가에 화분 두 개를 내다 놓고, 오전 10시에서 11시쯤 되면 다시 남쪽으로 난 창가로 화분을 옮겨 놓고, 해가 지는 저녁 7시에서 8시가 되면 다시 화분을 방 안에 갖다 놓는 번거로운 짓을 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햇빛을 쬐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하고 있는 짓인데 식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잘 모르겠다. 비가 와도 비는 맞힐 수 없고 습도만 높아지는데 지금 물을 줘도 될지 안 될지, 날은 더운데 볕은 생각보다 잘 들지 않는 날 에어컨을 켜 놓은 실내에 화분을 놔둬도 되는 것인지, 초보 식물 집사는 근심이 한가득이다.
앞전에 충동구매했다가 결국은 죽어버린 다육이가 얼마를 살았었는지, 그게 기억나지 않는 점이 안타깝다. 지금 집에 있는 다육이는 본의 아니게 집에 데려온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으니(그의 삼우제 하루 전날이었다) 어영부영 우리 집에서 일주일이 빠지는 석 달 정도를 산 셈이다. 내 손으로 어설프게 한 분갈이도 신경 쓰이고 내가 정말 물을 맞게 주고 있는 건지도 걱정스럽다(사실 나는 아직도 한 달에 한 번만 물을 주면 된다는 그 말을 반신반의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그간 아래쪽 잎들이 몇 개 하엽이 져서 말라 떨어졌을 뿐 자세히 들여다보면 옆가지로 새 앞이 조그맣게 나고 있는 걸로 봐서 이제 조금 적응을 한 것 같기도 한데, 그렇게 믿고 턱 마음을 놓아버려도 되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육이에 비해 무화과나무는 조금 대범하게 키우고 있는 편이다. 이 녀석은 나 같은 얼치기가 아니라 판매자님이 손수 화분에 심어서 보내셨으니까 적어도 분갈이를 맞게 했는가 하는 걱정은 하지 않고 있다. 물도 한 달에 한 번만 주면 된다는 다육이에 비해 4, 5일에 한 번씩, 물받이에 물이 고일만큼 주라는 지시 사항이 훨씬 납득할만해서 마음이 놓이는 편이다. 심지어 줄기의 가장 끝 부분에 얼마 전부터 뭔가가 동그랗게 맺히더니 이젠 제법 손톱만 한 덩어리로 커졌다. 저게 설마 무화과 열매인가. 이 녀석도 우리 집에 온 것이 5월 말이니 어영부영 우리 집에서 한 달 이상을 큰 탈 없이 지냈다. 그 손톱만 한 열매가 그 증거인 것 같아서 조금 흐뭇해졌다.
화분 둘을 키우는 것도 이렇게 자잘하게 신경이 쓰이는데, 얼마 전부터는 뭔가 꽃이 피는 화분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야금야금 들고 있는 중이다. 두 녀석 다 마냥 시퍼렇기만 해서 아들 둘을 키우는 기분이랄까.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블루 데이지가 꽃도 예쁘고 기본적인 조건만 맞추어주면 사철 내내 꽃이 피고 키우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해서 요즘 연신 결제창을 들먹거리는 중이다.
사람은 사랑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정을 쏟을 뭔가가 있어야 살 수 있다고 한다. 원래라면 거들떠도 안 봤을 화분에 이렇게 애면글면 공을 들이고 있는 나를 보면 정말 그런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내 마음을 달랠 만한 것이라고는, 아직은 그 손바닥만 한 화분 두 개뿐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