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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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특별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아도, 그저 누군가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인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리고 요즘 그 사실을 체감 중이다. 아마도 그가 떠나간 4월 8일에 한 나의 많은 행동들 중 가장 잘한 것 중 하나가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기분으로 상담센터를 검색해 심리 상담을 시작한 것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마도 이 일을 어딘가에,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않으면 내가 뭔가 사고를 칠지도 모르겠다는 본능적인 위기감이 그렇게 몰아간 게 아닐까.


흔히 말한다. 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조차 거짓말을 쓴다고. 그와 나를 아는 지인들에게 그의 일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도 나는 알게 모르게 많은 필터링을 거친다.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 듣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은 이야기들은 알아서 하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 씁쓸하게도 정작 그와 나를 아는 사람들 중에서는 이 글타래를 읽고 계시는 독자 여러분보다도 이 일에 관해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내가 이 일을 이겨내기 위해 어떤 짓까지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리고 그 정도는 아니지만 브런치에 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나는 나도 모르게 그런 검열의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너무 민망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들은 결국 여기에조차 적지 못한다. 그러니 아마 내가 이 문제에 관해 가장 솔직하게 내 속내를 다 드러낸 사람은 예의 상담사 선생님일 것이다.


월요일마다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나는 가끔 나 스스로도 몰랐던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선생님이 뭐라고 짚어줘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하는 말을 듣고서야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알게 되기도 한다. 어제도 그랬다. 요즘의 상담 분위기는 4월 경과는 조금 다르다. 그때는 상담시간 내내 제대로 된 말은 거의 하지 못하고 울기만 하다가 나온 적도 많았다. 그래도 요즘은 비교적 제대로 된 '대화'를 하다가 나오는 편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말이 끊어져 정적이 생기는 순간도 가끔 온다. 그리고 그런 순간 뒤에는 대개, 나는 나도 몰랐던 내 이야기를 하게 된다.


요즘 감정의 기복이 너무 심해서 힘들 때가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하던 참이었다. 나는 브런치에도 썼던 에어컨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정말로 옆에 있어서 내가 사는 꼴을 지켜보고 있다면 에어컨 안 틀고 여름을 나려고 했던 나에게 미련 떨지 말라며 야단을 쳤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나 혼자 사는 집에 에어컨을 트는 것이 너무나 죄책감이 든다고. 그래서 결국 면죄부 비슷하게 온도 설정을 높여 놓았다는 이야기를 하며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선생님 저는 제가 너무 잘 지내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순간순간 제 안의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신랑 잡아먹은 년이 처잘 거 다 처자고, 처먹을 거 다 처먹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아주 살판이 났네 하고. 혼자 잘 있다가도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면 누군가가 뒷덜미를 잡아끌고 4월 8일 아침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는 기분이에요.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라고 하면서. 4월쯤엔 그 순간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끌려가는 거리도 짧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꽤 정신을 차려서 그런지 끌려가는 거리도 너무 길고, 그만큼 고통스러워요. 내가 무슨 발악을 해봐도 결국은 이리로 다시 끌려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몇 시간 동안 아무것도 못 하겠어요. 여기까지 말해놓고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어제 상담을 하면서야 알았다.


결국 요즘 내가 겪고 있는 모든 것들은 그 한 마디 속에 들어있었다. 누군가에게 덜미를 잡혀 그날 아침으로 끌려가는 기분. 아무리 애를 써도 그 끔찍한 아침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 내가 부단히 애를 써서 내 일상을 회복하면 할수록 떨어지는 낙차는 그만큼 커질 것이고, 나는 그 추락감에 휩싸여 꼼짝하지 못하게 될 것 같은 그런 기분. 아무도 나에게 그런 것을 강요하고 있지 않음에도-심지어 떠난 그조차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를 들은 상담사 선생님은 본인에게 그런 심리적인 흐름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캐치한 것이 우선 다행스러운 일이며, 그 근거 없는 죄책감은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문화적인 환경과 죄책감에 유독 취약한 나의 기질이 한데 엮여 생겨난 실체가 없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앞으로의 상담은 그 부분을 해소하고 완화시키는 데 중점을 두면 좋을 것 같다는 얘기도 함께.


결국 내가 싸워야 할 것은 떠난 그의 빈자리가 아니라 살아서 나를 괴롭히는 나 자신인 모양이다. 나는 과연 나와 화해할 수 있을까.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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