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 좀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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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나는 소위 말하는 '집순이'고 밖에 나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쉴 수 있는 시간이 며칠 주어진다면 필요한 것들을 미리 사 둔 편안한 집 안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면서 보내는 것이 잘 알지도 못하는 곳을 돌아다니는 것보다 훨씬 즐겁고 편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래서인지, 가끔은 제법 심각하게 당일치기 혹은 1박 2일 정도로 멀지 않은 가까운 곳에 훌쩍 갔다 올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가 떠난 후 내가 다녀온 가장 먼 곳은 부산이다. 그가 떠나던 그 해 여름에 한 번 부산까지 출장을 다녀올 일이 있었지만 그때도 KTX를 타고 후다닥, 그야말로 볼일만 보고 집에 돌아왔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집을 떠나지 않은 지가 3년째가 되어가는 바, 너무 멀지 않은 곳에 잠깐 바람이라도 쐬러 갔다 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요즘 내가 꽂혀 있는 곳은 충청도 쪽에 있는 한 사찰이다. 절이나 성당은 딱히 종교와 상관없이 찾아가서 잠깐 고개를 조아리는 것만으로도 많은 마음의 평화를 주기 때문에 그가 있을 땐 다른 지방에 가게 되면 꼭 목적지 인근의 유명한 절이나 오래된 성당 한 군데씩은 들르고 왔었다. 그랬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만 문제는 언제나 그랬듯 교통편이다. 나는 차가 없고, 그래서 집에서는 제법 거리가 먼 그곳까지 다녀오기 위해서는 시외버스를 타야만 하는데 우리 집에서 그곳까지 가는 시외버스는 하루에 단 한 차례밖에 운행하지 않아서 일단 당일치기가 불가능하다. 물론 내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날 내에 돌아와서 돌봐야 할 가족도 반려동물도 없으니 일정 조율만 잘해두면 하루쯤 집 밖에서 자고 오는 것 정도는 아무 문제도 안 되기도 하고, 굳이 그날 안에 돌아와야겠다면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차편이 많은 서울로 올라와 서울애서 집으로 오는 방법을 쓸 수도 있긴 하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면 잠깐 짓눌려 있던 집순이로서의 자아가 슬그머니 고개를 쳐든다. 굳이 일부러 생돈을 써가면서,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나갔다 와야 하냐는 의문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도저히 나오지 않는 스케줄을 이것저것 맞춰 보다가 소셜 커머스의 여행 상품 구경이나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주로 호텔이나 리조트의 숙박권 위주로 올라와 있는 상품들 중에, 이런저런 할인 쿠폰을 쓰면 20만 원이 채 안 되는 가격으로 중국에서 3일을 묵고 올 수 있다는 상품이 올라와 있어 나도 모르게 이야 하는 탄성을 내질렀다. 20만 원이면, 당일치기가 안 돼서 하룻밤 자고 온다는 전제 하에 예의 충청도 사찰에만 하루 다녀와도 차비니 밥값이니에 하다 못해 무슨 기념품 같은 거라도 하나 사는 돈까지 포함하면 저 정도 돈은 쓰지 않을까. 그나마 이젠 둘도 아니고 나 혼자니까 정말 20만 원만 있으면 갔다 올 수 있겠네. 그런 생각에 괜히 좀 시무룩해졌다.


40만 원만 있으면 중국 여행도 다녀올 수 있는 거였는데. 이렇게 훌쩍 가버릴 줄 알았더라면 하다 못해 저런 데라도 한번 다녀올 걸 그랬다는 생각에 한참이나 그 페이지를 닫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아차피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고, 어차피 이런 날씨에 어디 여행을 가는 건 무리가 있고, 이 추위가 다 지나갈 무렵에는 저 여행 상품도 종료돼 올라와 있지 않을 테니 그걸로 됐다는 포도에 화풀이하는 여우의 심정으로 겨우 창을 끌 수 있었다. 후회를 희석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핑계가 필요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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