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오르골의 멜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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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나중에 어른이 돼서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을 벌면 사고 싶었던 물건 중에 오르골이 있다.


오르골에 대한 로망이랄지가 생긴 것은 어린 시절 친한 친구 하나가 생일 선물로 발레리나 인형이 빙빙 돌아가는 보석상자형 오르골을 선물 받은 걸 구경한 후였던 것 같다. 오르골은 공부에 필요한 물건 같은 게 아니었기 때문에 갖고 싶다고 말해봤자 아무 소용없을 것이라는 것을 지레짐작한 나는 부모님께 한 번도 그 오르골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그 대신 언젠가 내 손으로 돈을 벌면 꼭 그런 오르골을 하나 사겠다고 다짐했었다. 물론 정작 어른이 되고 나니 오르골보다 더 시급한 돈 쓸 곳이 널려 있었고 그래서 한참이나 순위가 밀린 오르골은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것을 하나 사지 못했다. 그와 함께 인테리어 소품 샵을 구경하러 갔다가 싼 맛에 하나 집어온 손으로 돌려서 'Hey Jude'의 멜로디를 연주할 수 있는 작은 오르골이 있었을 뿐이다. 그 오르골은 지금 그의 봉안당 제실 안에 들어가 있다.


얼마 전 중국에 계신 지인에게서 오르골 하나를 선물 받았다. 인형의 발아래 있는 태엽을 감아 놓아두면 인형이 빙빙 돌며 애수 띠고 단조로운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그 멜로디는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무슨 곡인지 알 수가 없어서 한참을 암중모색하다가 급기야 스마트폰의 음악 검색을 빌려 무슨 곡인지를 찾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가사도 없고 원음이 아니라 단조롭게 편곡된 오르골의 음색 때문인지, 혹은 태엽이 풀려감에 따라 템포가 조금씩 느려지기 때문인지 검색을 할 때마다 다른 결과가 검색돼 나왔고 심지어는 그 결과들 모두가 내가 찾는 그 곡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멜로디로 곡을 찾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 거꾸로 오르골 상품 자체를 찾아보기로 했다. 제조 회사의 홈페이지 같은 게 있다면 거기에는 무슨 멜로디를 사용했는지가 적혀 있지 않을까. 이미지 검색을 동원해 찾아본 오르골은 색깔이 조금씩 다른 것으로 다섯 가지 타입이 있었고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OST의 멜로디를 사용했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을 더 검색한 끝에, 지인에게서 선물 받은 오르골의 멜로디가 '천공의 성 라퓨타'에 나오는 '너를 테우고君をのせて'라는 곡이라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은 꽤 좋아해서 제법 많이 봤지만 유독 보지 못한 작품에 들어있던 곡이라 얼른 기억해내지 못했던 모양이다.


새삼 참 쉽고 편한 세상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언젠가 눈앞에 닥친 머리 아픈 일들이 다 지나가면 생일 선물로 당신이 직접 고른 멜로디가 들어가 있는 오르골 하나 사달라고 말하려고 했었다는 잠시 접어둔 기억까지 같이 떠올라버려서, 그 점은 조금 씁쓸하지만.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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