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렇게 서럽게 만들어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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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아침 일곱 시쯤이었다. 갑자기 배가 아파 잠에서 깼다. 어차피 한두 시간 있으면 일어나야 할 테고 지금 일어나는 건 왠지 손해 보는 기분이 드는 것 같아 최대한 꾸물거려 봤지만 배는 점점 더 아파왔다. 그로부터 꼬박 두 시간 동안, 나는 윗배를 쥐어트는 듯한 통증 때문에 화장실과 침대를 내내 오락가락하면서, 잔 것도 아니고 안 잔 것도 아닌 일요일 아침을 보내야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어차피 오늘은 일요일이니 늦잠 좀 자자 생각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당장 꽃병에 물도 갈아줘야 하고 혹시 간밤에 온 메일이나 메시지가 있지는 않은지도 확인해야 했다. 어제 밥을 먹고 남겨둔 밥이 있는데 내일은 또 나갔다 와야 하는 날이니 그 밥도 어떻게든 먹어 치우지 않으면 안 되고 빨래도 해서 널어야 하고 방방마다 비울 때가 된 쓰레기통도 비워야 한다. 이쯤에서 왈칵 짜증이 나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도리 없는 일이었다. 내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하니까.


꾸역꾸역 일어나 아침에 해야 할 일들만 대충 마치고 책상 앞에 앉았다. 누군가가 배 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어 그 속의 장기(위인지 장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를 잡아트는 것 같은 통증이 간헐적으로 찾아왔고 급기야 오한이 들어 온몸이 덜덜 떨렸다. 이래서 될 일이 아니다 싶어 기껏 껐던 전기장판을 다시 켜고, 한 시간 반 남짓을 역시나 자는 것도 아니고 안 자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누워 있었다. 도대체 이런 게 왜 집에 있는 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핫팩 하나를 뜯어서 배에 올려놓았다. 괜히 그러면 좀 나을까 싶어서.


내내 생각했다. 아무래도 배탈이 난 것 같은데 도대체 뭘 먹었다고 배탈이지. 배탈이 날 만한 거라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점심시간이 지났지만 배는 딱히 고프지 않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뭘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핸드폰으로 찾아본 위염이나 장염의 처치법에 의하면 그래도 수분 보충도 해줘야 하고 밥도 완전히 굶는 것은 별로 추천하지 않는단다. 죽이라도 배달시킬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다시금 밥솥 안에 들어있는 식은 밥 생각에 다시 한번 왈칵 짜증이 났다. 알았어. 알았어. 꾸역꾸역 다 먹고 그냥 죽으면 되잖아. 그런 모진 소리를 늘어놓으며, 그래도 어찌어찌 물에 식은 밥을 삶고 간장과 참기름으로 간을 하고 계란까지 하나 풀어넣어서 억지로 죽 비슷한 것을 끓여 한 술을 떴다.


해야 할 일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빨래도 해서 널어야 했고 쓰레기통도 비워야 했다. 플라스틱 재활용 쓰레기까지는 도저히 버리러 내려가지 못했다. 이 모든 일들을, 이렇게 아파 죽는 와중에도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니. 내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하는 거라니. 그나마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그랬던지 월요일 미팅에 가져갈 자료들은 토요일 밤에 다 만들어 두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아마 그 일까지 남아있었으면 창피한 줄도 모르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뻗고 앉아 한참이나 소리 내 울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또 지청구는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사람 이렇게 서럽게 만들어놓고 혼자 그딴 식으로 내빼기 있냐고.


2024070202271_0.jpg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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