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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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큰맘 먹고 주문한 튤립이 열 송이 중 세 송이나 중간에 줄기가 물러져 꺾여버려서 또 조금 마음이 상했다는 글을 얼마 전에 쓴 적이 있다. 그리고 그 후임으로 새벽배송이 되는 업체에서 미니장미를 주문했다는 이야기도 아마도 했던 것 같다.


그 사이 갑작스러운 폭설과 강추위가 닥쳤고 다행히 장미가 잘 버텨주긴 했지만 이제 슬슬 꽃잎 끝부터 말라 들어가던 중이었다. 추위가 걷히는 이번 주 배송 예정으로 판매 하나가 새로 열리긴 했는데, 일전의 튤립과 같은 상품이 또 나왔다. 심지어는 한 단 가격에 몇 천 원 정도 더해 두 단을 묶음으로 출하하는 단일 옵션이었다. 아, 이걸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지만 장미가 아무래도 그 이상 버티기는 힘들 것 같아 보여서 결국 눈 딱 감고 이번에도 튤립을 주문했다. 다행히 저번엔 오렌지색 단일로 주문했지만 이번 튤립은 랜덤으로 온다는 모양이니 조금의 변화는 있겠지 하는 것이 위안을 삼고.


그러나 역시나 줄기가 물러져 꺾어진 튤립을 처음 발견한 순간에 느낀 가슴이 철렁하던 기분은 쉽사리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판매자님에게 문의글을 남겼다. 튤립이 줄기가 물러져서 채 피기도 전에 꺾어지는데 어떡하면 좋을까요, 하고. 다른 분들은 이런 일을 겪지 않는가 하고 구매 후기를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제일 상단에 올라온 후기글에 튤립 봉오리 아래를 바늘로 한 번 찔러주면 줄기가 눕지 않고 일자로 선다는 유튜브를 보고 따라 해봤더니 정말 그렇더라는 말을 읽고 눈이 번쩍 띄었다.


당장 '튤립 오래 보는 법'을 인터넷에 검색했다. 후기를 쓰신 분의 말씀이 맞았다. 튤립의 봉오리 아래 줄기를 바늘로 한번 찔러주면 줄기가 휘어지지 않고 일자로 꼿꼿하게 선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었다. 튤립의 줄기는 물 올림이 지나치게 좋은 편이라 다른 꽃들처럼 줄기를 사선으로 자르지 말고 일자로 평평하게 자르는 것이 좋고 줄기를 감싸듯이 나는 튤립 특유의 긴 잎은 아래로 잡아당기지 말고 옆으로 돌려서 까듯이 떼어줘야 꽃병의 물을 탁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열탕소독까지 한 꽃병 두 개에 꽃가위와 바늘까지 준비해서, 지난주보단 조금 나아졌다지만 그래도 추운 길을 뚫고 오느라 시퍼렇게 질린 튤립을 열심히 공부한 대로 다듬어 반 단씩 섞어서 꽂아 놓았다. 괜히 줄기를 너무 길게 남겼다가 낭패한 저번 일이 떠올라 이번엔 미리 줄기도 조금 짧게 잘랐다. 이번 실험이 성공한다면 앞으로는 조금 더 부담 없는 기분으로 튤립을 사서 꽂아놓을 수 있게 되겠지.


처치의 효과가 나타나기에 한나절은 아직 짧다는 걸 모르지도 않는데도 저녁 내내 그의 책상에 가져다 놓은 꽃병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처음 꽂았을 때는 휘어져 있던 튤립의 줄기가 차츰 꼿꼿하게 일어서는 것을 보고 정말 효과가 있나 하고 감탄했다. 그의 책상에 꽃을 꽂아놓은 지 이제 3년이 되어가는데도 아직도 난 뭐 이렇게 모르는 게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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