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비타민 드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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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사람은 의외로 단순해서 '빨간 날'이 아닌 보통날은 그냥 뭉뚱그려서 평일로 취급해 버리는 습성이 있고, 그러니 그 의미의 중요성에 비추어 인간적으로 어버이날과 제헌절 정도는 '빨간 날'로 지정해야 한다는 글을 읽고 웃었던 기억이 있다. 어버이날이야 어버이날인데 제헌절은 좀 오버지, 하고 생각했는데 헌법책 필사한다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는 요즘의 시국을 보면 제헌절도 꼭 '빨간 날'에 포함되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사실 정말 그렇다. 매일매일 비슷비슷한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빨간 날'이 아닌 날은 일부러 신경 쓰지 않으면 챙기기도 쉽지 않다. 정월대보름도 그런 날 중의 하나다. 그러고 보니 설 지나고 2주쯤 뒤가 정월대보름이 아니던가 하는 생각에 달력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그러니까 발행일 기준 오늘)이 정월대보름이었다. 거 참, 이럴 줄 알았으면 월요일에 미팅 갔다 오면서 마트 들를 때 거창한 부럼거리까지는 아니어도 아몬드 빼빼로라도 한 갑 사 왔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제대로 된 오곡밥이라도 지어먹자는 것도 아니고 그깟 아몬드 빼빼로 한 갑쯤, 그냥 간단하게 집 앞 편의점 가서 사 오자고 생각하고 오후쯤 집 앞 편의점으로 갔다. 매대에 놓인 빼빼로 옆에는 난데없이 한 병에 천 원 정도 하는 비타민 드링크 한 병이 증정상품으로 붙어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1800원짜리 빼빼로를 사면 천 원짜리 비타민 드링크가 덤이라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사장님께 이거 하나만 사도 주는 거냐고 여쭤보았다. 그 말에 돌아온 사장님의 대답인 즉 '빼빼로 빼기 대작전' 중이란다. 아. 그제야 납득이 갔다. 이번 주 금요일이 발렌타인데이고, 그날을 위해 최대한 매대를 확보해야 할 상황이니 작년 11월 11일부터 수능을 거쳐 지금까지도 팔지 못하고 있는 빼빼로를 정리하기 위해서 비타민 드링크를 증정하는 행사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비타민 드링크를 증정하는 빼빼로들은 나온 지 좀 오래된, 오리지널과 아몬드뿐이었고 새로 나온 신상 빼빼로들은 죄다 행사 제외인 것만 봐도 그런 것 같아 보였다.


뭐 이렇거나 저렇거나 나로서는 나쁘지 않아서, 그리고 비타민 드링크와 상관없이 어차피 내 목적은 오도독 씹히는 맛이 있는 아몬드 빼빼로였으므로 망설임 없이 아몬드 빼빼로 한 갑과 비타민 드링크 한 병을 집었다. 저는 이거 내일 대보름이라 부럼 하려고 사가는 건데, 하고 말했더니 사장님은 대번에 반색을 하시더니 그거 좀 입구에 써붙여놔야겠다고 웃으셨다. 아무튼 천 원이나 하는 비타민 드링크 한 병을 공짜로 얻어온 덕분에 빼빼로는 800원만 주고 산 셈이 되었고 가뜩이나 일요일의 배탈 후 그 좋아하던 커피도 못 마시고 있던 차에 오랜만에 비타민 드링크도 한 병 먹을 수 있게 됐으니 이만하면 두루두루 다 좋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올해 부럼은, 본의 아니게 벌써부터 약간 효험이 있는 모양인가 싶기도 하다.


20171102000483_0.jpg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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