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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 실컷 이것저것 주문을 해놓고서야 빼먹고 주문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는 아차 하는 일은 내게는 뭐 그리 드물지도 않은 일이다. 심지어 최소 주문 금액을 맞추느라 지금 당장은 필요하지 않은 물건까지 몇 가지 끼워서 주문을 해놓고 뭔가를 까먹고 주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정신머리 없는 나 자신이 좀 심각하게 미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겠나. 남이 그러면 구박이라도 하지, 내가 그런 걸.
이번의 빼먹은 품목은 배수구 세정제와 비닐팩이었다. 그나마 이번 것들은 둘 다 남아있는 양을 대중하지 못해서 주문하지 못한 것이라 숫제 홀랑 까먹어버린 것보다는 좀 덜 억울하긴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쉽고 편하게 마우스질 몇 번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을 집에서 10분 넘게 걸어가야 있는 생활용품판매점까지 걸어가게 생긴 것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날씨가 풀려서 길가를 가득 덮고 있던 눈이 싹 녹아서 걸어가기 편하게 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긴 했다.
매장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비닐팩과 배수구 세정제만 딱 사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와야지 하고 다짐했다. 그러나 늘 그렇듯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이곳의 물건들은 대개 가격이 싸고, 몇 가지를 욕심스레 집어서 장바구니에 담아도 만 원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잠시 잘 보이고 싶은 여주인공 앞에서 거만스레 턱짓을 하며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다 달라'는 재벌 2세가 된 기분으로 넋을 놓고 이것도 필요할 거 같고 저것도 필요할 거 같아서 주섬주섬 몇 가지 물건을 별 고민도 하지 않고 주워 담았다.
그러다가 한 가지 처음 보는 물건을 발견했다. 끈으로 입구를 졸라 묶을 수 있게 생긴 주머니 비슷한 것인데 매우 올이 큰 망사로 되어 있는 이 물건의 이름은 무려 '비누 거품망'이란다. 아아. 그제야 나는 집 욕실에 있는, 말라비틀어져 이젠 거품 비슷한 것이 조금도 나지 않는 비누를 떠올렸다. 수분이 말라버려 거품이 나지 않는 비누는 양파망이나 스타킹 등에 담아 쓰면 표면이 갈려나가 다시 거품이 잘 난다는 글을 인터넷 어딘가에서 읽었지만 비누를 담자고 따로 스타킹을 사는 것도 내키지 않고 양파망에 담는 것은 어딘가 찜찜해서 차마 시도해 보지는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단돈 천 원에 세 개나 든 한 팩을 살 수 있으니 가격도 저렴했다. 두 번도 고민하지 않고 덥석 집어 바구니에 담았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비닐 포장을 뜯고 하나를 집어 욕실로 들고 갔다. 손을 씻으며 망에 담은 비누를 문질러보니 이게 웬일이야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거품이 잘 일어났다. 당초 예상한 금액이 두 배도 넘는 충동구매를 했지만 까짓것 이 거품망 하나 잘 사 온 것으로 죄다 퉁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의 기분이라는 건 참 별 것도 아닌 일에 이렇게까지 좋아질 수도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