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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동안은 내내 날씨가 푸근해서 패딩은커녕 가디건 하나 걸치지 않고 집 앞 편의점을 갔다 오면서도 추운 줄도 몰랐다. 이대로 조금씩 날씨가 풀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은 무리였던 모양이다. 대번 월요일 미팅을 하러 집 밖에 나가보니 바람이 차서 마스크를 안 썼으면 꽤나 얼굴이 시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핸드폰을 오래 만지작거리고 있기가 쉽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도 한 가지, 주말 며칠 동안 따뜻했던 날씨 덕분에 길에 쌓인 눈들이 정말 귀신같이 전부 녹고 없었다. 주말 동안 누가 내가 다닐 길을 미리 일고 일부러 일일이 제설해 놓은 것이 아니라면 그건 아마 전적으로 한낮엔 10도 가까이까지 기온이 올라갔던 주말의 날씨 덕분일 것이다. 쌓여있던 눈들은 물론이고 눈이 여러 번 밟혀 짓이겨지고 다져져서 반들반들하게 굳어진 블랙아이스도 상당 부분 녹아서 없어지고 거의 대부분의 길바닥에 맨땅이 드러나 있었다. 덕분에 지난 발렌타인데이에 그랬듯 살얼음을 잘못 밟아 미끄러져 성한 오른쪽 무릎마저 깰 걱정은 안 해도 되어서 그것 하나만은 정말 좋았다. 설마 이대로 한 번의 추위도 없이 순조롭게 봄이 오지는 않겠지만 지난번 같은 폭설만 추가로 안 온다면 그 지긋지긋한 낙상 걱정은 좀 안 해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얼어서 미끄러운 길 걷는 것이 너무 큰 스트레스여서 좀 안 미끄러지는 신발 같은 걸 하나 따로 사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었고, 특히나 월요일에 미팅을 마치고 그를 보러 봉안당에 가려고 버스 정류장에 내랴 눈 쌓인 비탈길을 올려다보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와서 그냥 택시라도 탈까 하는 나약한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 따위는 다 시간 앞에 부질없고 흐르는 계절 앞에 쓸모없었던 모양이다. 때가 되고 시간이 가니 알아서 쌓인 눈은 녹고 길에 뒤덮여 있던 얼음은 치워졌다. 아직은 조금 섣부른 생각이긴 하지만 조만간 길가에 서 있는 나무 가지에도 새순이 돋고 하나둘씩 꽃도 피겠지. 미끄러질까 걸음걸음마다 조심을 하지 않아도 되는 탓인지 그런 생각을 좀 했다.
사람이 억지로 애를 쓰지 않아도 날은 가고 시간도 가고, 그래서 이루어질 일들은 이루어지는 모양이다. 바닥이 드러난 길을 걸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