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상엔 왜 3년이 걸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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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3년상을 지내는 것은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걷거나 뛸 수 있는 짐승과는 달라서 태어나 꼬박 3년 정도는 지나야 겨우 그 품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3년상은 너무 길지 않나 하는 생각을 예전엔 좀 했었다. 물론 실제 조선 시대에도 생업을 3년이나 중지하고 부모의 묘살이만을 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대단히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형제들끼리 돌아가며 몇 달씩 묘 살이를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넘어가긴 했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모님이나 가족 등의 상사가 있으면 3년간 상을 입는 것이 어쨌든 공식적인 예법이기는 하다는 말이며 왜 하필이면 3년일까 하는 생각을 어려서 꽤 해 본 적이 있었다.


그가 떠나고 난 후 한동안 내 기상시간은 아침 여섯 시 전후였다. 물론 그만큼 일찍 자리에 눕긴 했다. 오래 앉아있을 힘도 없었고 그럴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단지 일찍 눕기 때문에 일찍 일어난다기보다는, 그냥 그 이상은 누워 있을 수가 없어서 일어나는 것에 가까웠다. 그래서 억지로 세워놓은 아침 루틴을 다 돌고도 시간이 한참이나 남아서, 아침 업무를 시작하기 전까지 한 시간 이상이나 텅 비는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내게는 무척 괴로웠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던 내 기상시간은 야금야금 늘어지기 시작해서 요즘은 기어이 여덟 시 반 정도까지 밀렸다. 가끔 잠을 설치는 날은 아홉 시까지 밀리기도 한다. 물론 이렇게까지 밀린 것에는 지난 12월의 그 비상계엄이 아주 큰 역할을 담당하긴 했다. 도대체 그래서 이 나라가 어떻게 된다는 건지, 뉴스 몇 가지와 게시판 몇 군데를 찾아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시간은 새벽 두 시를 훌쩍 넘겼고 가끔은 세 시를 넘길 때도 있었다. 그러던 루틴이 두어 달 새 굳어져 버린 탓이 물론 크긴 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다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냥 그 3년의 시간 동안 나는 좀 나태해졌고, 좀 무뎌졌고, 조금은 뻔뻔해진 것이다. 그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에.


나는 나 자신을 퍽 평범하고 표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니 사람이 사람 하나의 부재에 적당히 뻔뻔해지는 데 대충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기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3년상을 치른다는 예법이 생긴 것이구나 하고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1년밖에 안 됐지만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입는 것에 아무런 마음의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제자에게 그러면 너는 1년상만 지내라고 한 뒤 저 녀석은 인성이 틀려먹었구나 하고 탄식했다는 공자님의 식견은 의외로 나름의 일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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