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시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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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아주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나는 소위 '날씬'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건 아마 어느 정도는 타고난 것일 테고 그 외에 상당 부분은 악착같이 뭔가에 매달리지 못하는(특히나 몸 가꾸는 일 등에) 내 성격 때문일 것이다. 내 체중이 정상 범주에 들었던 것은 한참 신체 효율도 좋은 데다 이리저리 움직일 일 많았던 중고등학교 정도 때 뿐이었고 스무 살이 지난 이래 내 체중은 내내 과체중 상태였다.


그가 갑작스레 내 곁을 떠나간 후 매우 현실적인 두려움에 직면했다. 내게 '만일의 일'이 생기면 아마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할 거라는 점이었다. 적어도 내 손으로 119에 전화를 걸 수는 있어야 한다. 그런, 날씬한 몸매 예쁜 옷 같은 추상적인 무언가가 아닌 대단히 현실적인 동기 부여로 인해 나는 그가 떠나간 후 어설픈 루틴이나마 홈트를 시작했고 병원에 입원해 있던 서너 달 정도의 시간과 몇 달 전 아파트 복도에서 미끄러져 찰지게 엉덩방아를 찧는 바람에 조금 조심하느라 하루 정도를 쉰 것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있다.


본래의 계획대로라면 내 체중은 지금쯤에는 정상 체중에 진입했거나, 적어도 그 언저리까지는 왔어야 맞다. 그러나 내 체중은 아직도 과체중 상태다. 물론 그가 떠나기 전에 비하면 한결 나아지긴 했지만 거의 1년 이상 제자리걸음 중이다. 어차피 누구 보여줄 몸을 만드느라 시작한 다이어트는 아니어서 큰 조바심 같은 것은 없지만, 그래도 가끔은 운동량을 좀 늘려야 하는 건지 혹은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지 하는 걱정이 슬그머니 들 때가 있다.


그러던 중 자주 가는 카페 게시판에서 그런 글을 봤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닭가슴살과 고구마를 주로 먹는 것은 닭가슴살과 고구마가 무슨 살 빼는 특효약 같은 것이어서가 아니라 '계량하기 좋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였다. 운동으로 소모되는 칼로리는 생각보다 크지 않고 오히려 더 큰 공복감만 유발하기 쉬우며, 그래서 운동도 좋지만 먹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그분은 말씀하셨다. 살을 빼고자 한다면 권장 칼로리보다 적게 먹어야 하는데 그러던 중에 머리가 어지럽거나 하는 증상이 나타나면 칼로리를 너무 과하게 줄인 것이니 조금 더 먹어야 하고, 버틸만하면 조금 더 줄여보는 식으로 음식을 조절해야 하는데 그러기에 딱 좋은 것이 고구마 몇 개, 닭가슴살 몇 그람 하는 식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였다. 본인이 하루에 먹는 것을 되돌아보고 1800kcal 정도로 하루에 섭취하는 열량을 제한하는 것에서부터 모든 다이어트는 시작된다고 그 글은 끝을 맺고 있었다.


바로 어제 그가 떠난 지 3년이 되면서 슬금슬금 기상시간이 느슨해져가고 있다는 글을 썼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가 떠나간 직후엔 정말로 프로틴 음료 서너 병으로 하루를 견뎠고 그러고도 배고픈 줄도 몰랐다. 그리고 꽤나 오래 밥은 하루에 한 끼, 아침에 일어나 마시는 두유 한 팩과 저녁 무렵 먹는 요거트 하나 정도가 내가 하루 종일 먹는 음식의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랬다가는 단박 저녁이 되면 출출해져서 네다섯 시가 되면 시간이 더 늦기 전에 뭐라도 먹어야 하지 않나 하고 기웃거리게 된다. 사실 그렇다. 사람의 몸은 꽤 정직하다. 움직이는 것보다 적게 먹으면 살이 빠지고 더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 최저점에서 5, 6킬로쯤이 도로 찐 지점에서 매일 아슬아슬하게 몇 그램씩의 진퇴를 거듭하고 있는 내 체중은, 그냥 내가 먹는 양이 예전보다 야금야금 늘어나고 있다는 뜻일 뿐인지도 모른다.


여자가 한 번 칼을 뽑았으면 썩은 무라도 자르는 것이 맞다. 이왕 시작한 다이어트가 이런 식으로 흐지부지 끝나는 것은 그리 바라는 바가 아니어서, 좀 독하게 마음먹고 저녁 무렵 야금야금 먹던 간식을 다시 끊어보기로 했다. 워낙 독하지 못한 내 성격 상 또 이러다가 슬그머니,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사느냐고 다시 상황 해제를 할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1800칼로리-식단-쉽게-짜는-방법이-궁금하세요.jpg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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