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시간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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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2월 말부터 날씨가 풀린다 운운하는 기상청의 예보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나라 기상청은 태풍을 잘 못 맞출 뿐 연간 단위 날씨 예보는 그럭저럭 잘 맞추는 편이라는데 그럼 정말로 올해 여름은 4월부터 11월까지라는 말일까 하는 글을 얼마 전에 쓴 기억이 있다. 꼼짝도 않고 집 안에만 들어앉아 있는데도 이상하게 날이 추워서 나도 모르게 곱아든 손을 부비고 있지만 당장 이번 주 목요일부터 최고 기온이 10도 넘게 올라갈 예정이라니 참 비위 맞추기 힘든 요즘 날씨다.


그렇게 날도 풀린다는데 이제 시간 내 집 밖에 산책이라도 좀 하러 다니라고 늘 전화주시던 지인 분이 걱정 섞인 잔소리를 하셨다. 그 말끝에 맞장구를 치려다가 어제 글에서 쓴 한동안 마음잡고 하루에 한 시간씩 집 근처 산택만 했는데도 살이 7킬로그램이나 빠지더라는 말을 했다. 아니 그렇게 좋은 걸 왜 안 하느냐고 지인 분은 대뜸 그렇게 물으셨다. 넌 출근도 안 하고 집에서 일하면서 도대체 왜 시간이 없냐고.


그 말에 잠시 대답할 말이 궁해졌다.


물론 그렇다. 나는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 시달리며 회사까지 가지는 않아도 된다. 회사에 다니는 게 힘들다는 말에는 업무 자체의 고됨도 물론 있겠지만 이런 출퇴근의 애환과 사람이 사람과 부대끼며 겪는 온갖 피곤한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가 분명히 존재할 것이기에 그런 게 없거나 한결 낮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할 말은 많이 없어지는 게 사실이다. 가사 노동의 일을 생각해 봐도 마찬가지다. 나는 혼자 살고, 내게는 특별히 챙겨야 할 남편도 아이도 심지어 반려동물도 없다. 얼마 전 배탈이 나 하루를 앓고 나서 쓴 글에 내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한다는 게 혼자 사는 것의 서러운 점이라고 썼지만 이 말은 뒤집으면 나만 참으면 아무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말이 되기도 하는 게 사실이니까.


물론 재택근무의 근무 시간은 의외로 그리 짧진 않다. 재택 업무를 하는 비슷한 업종의 종사자끼리 하는 말로 재택근무는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대신에 퇴근 시간도 없다는 말이 있다. 회사를 나오면 그때부터는 업무 외 시간이라고 정확히 선이 그어지는 출근 업무와 달리, 재택근무는 그 선이 상대적으로 흐려서 일을 시키는 사람이나 일을 하는 사람 본인이나 아무래도 조금 시간관념 없이 업무에 임하게 되기도 쉽다. 실제로 내가 하는 업무 중 상당 부분이 '이미 담당자가 퇴근해 버려서' 내가 대신 떠맡는 것들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 그렇다. 어쨌든 편하게 집에서 일한다지만 그 일 자체도 그렇게 쉽게 대충 하는 것만은 아니고, 아무리 거둬 먹일 것이 나 하나뿐이래도 결국 밥이든 청소든 빨래든 1인분이나 2인분이나 양의 많고 적음의 차이만 있을 뿐 해야 하는 일들은 어차피 똑같이 해야 하는데. 혼자 산다고 밥을 전혀 안 해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빨래를 전혀 안 해도 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나 한 사람이 책임져야 되는 일들의 총량은, 혼자 살면서 재택근무를 한다고 별로 차이가 많이 나진 않는데.


그러나 내게 저런 잔소리를 하시는 지인 분은 정년의 나이가 가까우신대도 아직도 꿋꿋하게 일하러 다니시면서 집에서는 남편과 자녀들(물론 이젠 그나마 독립해서 슬하를 떠났다지만)까지 챙기는 일당백 슈퍼우먼이시라 그분의 앞에서 감히 저런 변명을 할 엄두는 내지 못하고, 그냥 그러게요 하고 대충 얼버무렸다. 그렇지만 내내 집에 있어도 할 일 많은데. 하루 한 시간 산책할 짬이 안 나는 건, 물론 대부분은 내가 게으른 탓인 게 맞지만 또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닌데. 괜히, 전화를 끊고 나서야 귀먹은 볼멘소리를 해본다.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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