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다시 여기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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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부산에 다녀왔다. 꼭 12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 그중에 차에서 보낸 시간이 일곱 시간쯤 되고 일을 보는 데 한 시간이 걸렸으니, 부산에서 내가 보낸 자유 시간은 총 네 시간 반 남짓이 되는 셈이다. 물론 그중 대부분은 길을 헤매 다니거나 플랫폼에 멍하니 앉아 기차가 출발하는 시간을 기다리는 데 썼다.


내려가는 기차가 조금 연착을 하는 바람에 미팅 시간이 빠듯했다. 한참을 핸드폰 지도에 의존한 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한 끝에 겨우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예상대로 미팅 자체는 한 시간여만에 끝났다. 세 시간이 채 안 남은 시간 동안 뭘 해야 할까. 시간이 조금 넉넉했더라면 용궁사에, 그를 위해 올려놓은 연등을 보러 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시간이 빠듯했고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 연등 보러는 이다음에, 나도 오빠도 조금 편해지고 나면 그때 가자고, 내 멋대로 그렇게 생각해 버렸다.


이제 밥을 먹고 시간을 조금 때우다가 올라가는 기차를 타는 것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여기까지나 왔는데, 물 구경 한 번 하지 못하고 올라가는 것도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팅 장소 근방에는 부산 여객 터미널이 있다. 나는 무턱대고 그리로 가 보기로 했다. 거기 가면 아마 조각났으나마 바다가 있지 않을까 해서. 그리고 그 생각은 맞았다. 나는 여객 터미널 테라스에서 오랜만에 보는 고향의 바다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오빠 이번엔 내려오는 것도 너무 갑작스러웠고, 바다 보려고 여기저기 다닐 마음의 여유가 안 생기네. 다음번에 오게 되면 해운대 마린시티 가서 다시 사진도 찍고, 광안리 가서 재첩 정식도 먹고, 동백섬에 있던 토끼들이 잘 있는지도 보고 그러자. 사람이 없는 걸 핑계로 그런 말도 중얼거렸다.


나가기 전 집어먹은 빵 한 조각이 오늘 먹은 음식의 전부였던지라 배가 급격하게 고팠다. 부산역 근처에는 50년도 넘은, 화교 분이 운영하는 만두가 유명한 중식당이 있다. 나는 그 집의 만두를 좋아했지만 그는 그 집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언제 부산에 가면 꼭 한 번 가보기로 했었던 약속을 나 혼자서라도 지키러 그 집에 갔다. 별로 고민도 하지 않고 짜장면 한 그릇과 찐만두 한 접시를 시켰다. 나는 배가 무척 고픈 상태였고, 그래서 나중에 나온 짜장면은 사진조차 찍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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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년 만에 하는지 기억도 안 나는 혼밥을 하고 역사로 돌아와, 가게 몇 군데를 기웃거리다 보니 어느새 기차 시간이 되었다. 대전 근처를 지날 무렵 차창 밖으로 비가 오기 시작했다. 아, 비 오나. 지난주 일정이 잡히고 나서 날씨를 확인해 보니 태풍이 올 예정이라던 일기 예보가 있었었다. 그러나 역시나 비는 오지 않고, 딱 적당하게 구름이 끼어 햇빛을 가리기에 또 역시 열일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위쪽으로는 소나기가 조금씩 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기차가 대전을 통과해 천안 부근을 지나자 어쨌든 비는 그쳤다. 그러나 바깥이 완전히 어두워져 버려 날씨가 어떤지는 이제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가방 속에 챙겨 온 우산을 굳이 펼칠 일 없이 집에 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리고 그 비는 마치 내가 집에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던 듯이, 내가 집 앞 버스 정류장에 내리자 한 방울씩 듣기 시작하더니 집에 도착해 한숨을 돌리자마자 누가 일부러 쏟아붓는 듯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만 웃고 말았다. 참, 울 오빠 욕 본다. 그런 말을 하면서.


그렇게, 여행이 될 수도 있었던 나의 부산 출장은 소박한 당일치기 출장으로 그렇게 끝났다.


일 때문이 아니라 그냥 부산에 가보고 싶어서 갈 기회가 언제쯤 올까. 그때쯤이 되면 괜한 씁쓸함에 서글퍼지지 않고, 이번에 가지 못하고 돌아온 곳들을 다 가볼 수 있게 될까. 부디 그러기를 바란다. 부산의 바닷가는 언제라도 거기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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