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용도

-458

by 문득

서울을 떠나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 온 것이 12, 3년쯤 되나 보다. 그 사이 우리 동네는 엄청 많이 변했다. 처음 이사 올 때만 해도 네비가 잘 찍히지 않을 정도였고 한 발만 나가도 논밭이 있었는데 지금은 쭉쭉 뻗은 아파트 대단지가 두 군데나 들어섰고 동네 구석구석엔 꽤 신기하고 재미있는 가게들도 많이 들어섰다. 그 사이 많은 것들이 없어졌고 또 그만큼 많은 것들이 새로 생겼다.


이런 동네다 보니 신축하는 건물도 많고, 그 과정에서 애매한 자투리 공터가 꽤 자주 생기는 편이다. 그리고 그런 공터들은 대부분 '주차장'으로 사용된다. 어디나 그렇듯 우리 동네에도 차가 많고(가끔은 사람보다 차가 더 많이 사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차 댈 곳은 언제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비어 있을 때는 지나가는 차들이 적당히 눈치껏 차를 대고, 정식으로 수용되어 공공 주차장이 되면 소정의 금액을 결제한 차들이 차를 대는 장소로 보통 이용된다. 사실 그것 말고 달리 다른 용도가 있을 거라고는 별로 생각해 보지 못했다.


날씨가 많이 풀렸다기에, 간만에 패딩 대신 가디건이나 하나 걸치고 서류 몇 가지 떼러 행정복지센터에 갔다. 날은 풀린 정도가 아니라 좀 걷다 보니 살짝 덥기까지 해서 올해 날씨가 참으로 진폭이 만만치 않겠구나 하는 때 이른 걱정을 하게 했다. 그렇게 버스로 서너 정류장쯤 떨어져 있는 행정복지센터까지 걸어가서 서류를 떼서 돌아오는 길에 낯선 안내판 하나가 걸려 있는 예의 공터를 발견했다. 작은 공터 주변으로 둘러쳐진 연두색 펜스는 익히 아는 공영 주차장의 그것인데, 그 앞에 붙어있는 내용이 사뭇 달랐다. 무려 '공영 반려견 놀이터'란다. 아하. 이것 참 좋은 생각이구나 하고 나도 모르게 한참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은 반려동물 키우는 사람이 많고, 그건 우리 동네에도 그렇다. 이 손바닥만 한 동네에 내가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 안에만 동물 병원이 두 군데나 있고 꽤 규모가 큰 반려동물 용품샵도 있다. 그런 걸 보면 우리 동네에도 반려동물을 기르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겠고, 산책시키는 게 아니라는 고양이와 달리 강아지는 집 안에서만 키울 수 없는 동물이니까 매일 일정시간만큼의 산책을 시켜줘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외에도 이렇게 마음대로 뛰어다닐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견주에게나 강아지에게나 이것도 좋은 일이 아닐까. 누군지 모르지만 생각 잘했네. 그런 생각에, 개를 키우는 것도 아니면서도 한참이나 그 놀이터 안을 이리저리 들여다보았다.


어영부영 집에 돌아와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핸드폰이 게으른 주인에게 정해 준 하루 6천 보 숙제를 오늘은 용케 해치우는 데 성공한 모양이다. 남의 집 강아지 걱정을 할 게 아니라, 정말 나도 근처 공원이라도 하루에 한 바퀴씩 걸어야지. 그런 생각을 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걸로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