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없는 삼겹살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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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는 건 사실 매우 편리하긴 하다. 그러나 역시나 매장에 직접 가서 이것저것 들었다 놨다 하며, 그러다가 원래 사려던 것보다 더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때로는 별 생각도 없던 것을 충동구매하기도 하며 직접 물건을 사는 것과 같은 '손맛'은 아무래도 없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로서는 별로 선택의 여지는 없다. 특히 마트에서 물건을 주문할 때 특히 그렇다. 나같이 차가 없는 사람의 경우는 생수니 쌀이니 하는 무거운 물건을 집까지 낑낑대며 들고 오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그야말로 압도적인 메리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명백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해서 마트에서 사지 않는 품목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고기다. 이미 몇 번 언급한 것 같지만 집 근처에 있는 마트는 근처의 축협과 연계되어 있어서 마트의 고기와 비교했을 때 같은 중량이면 값이 더 싸고 같은 값이면 중량이 더 많으며, 값과 중량이 둘 다 같으면 등급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기 때문이다.


찌개 끓여 먹을 때 쓸 고기도 필요하고 난데없는 짜장가루가 한 팩 있어서 이것도 먹어치울 겸, 짜장밥이든 짜장면이든 해먹기도 해야 할 것 같아 거기에 필요한 등심도 조금 사야 해서 집 근처 마트에 갔다. 유난히 돼지고기 코너에 사람이 많아서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생각해 보니 3월 3일이 삼겹살 데이였다. 이왕 고기 사러 온 것, 나도 삼겹살이나 조금 사 가서 구워 먹을까. 또 충동구매 비슷하게 그런 생각을 한 것까진 좋았다.


예전엔 분명히 소고기보다 싸서 돼지고기를 먹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이게 어디가 소고기보다 더 싸다는 건지 알 수가 없게 된 지가 좀 됐다. 같은 중량의 삼겹살과 목살이 거의 30 퍼센트 가까이 가격 차이가 나서, 한참이나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다가 내 입엔 목살도 삼겹살만큼 맛있더라는 핑계로 그냥 목살을 집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3월 3일에 삼겹살 구워 먹을 계획을 세워 두고 이렇게 저렇게 식단을 맞춰 봤으나 식단표는 마치 길다란 블럭이 죽어도 나오지 않아 망해버린 테트리스처럼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도저히 막 마음에 들게 맞춰지지 않았다. 이건 요리할 때 들어갈 게맛살의 유통기한 때문에 죽어도 이날까진 먹어야 하고, 다음 주는 대체공휴일 때문에 미팅이 월요일이 아닌 화요일에 있으니 밥통 속에 식은 밥을 남겨둬서도 안 됐다. 한참이나 이렇게 저렇게 밀고 당기고 해 봐도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아, 그냥 3월 2일로 삼겹살(이 아니라 목살) 구워 먹는 날을 옮겼다. 그랬더니 10여분 가까이 한 씨름이 무색하리만큼 모든 식단이 딱 맞게 제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그래서 뭐, 3월 3일이 아닌 3월 2일에, 삼겹살도 아닌 목살을 구워 먹는 것으로 올해의 삼겹살 데이를 보내게 되었더라 하는 그런 결론이다. 이게 무슨 '홍철 없는 홍철팀'도 아니고 삼겹살 없는 삼겹살 데이인가 하는 생각에 실없이 좀 웃었다. 날짜 맞춰 삼겹살 한 번 구워 먹는 것조차도 쉽지 않으니 사는 게 어떻게 쉽겠나 하는 생각을 한다.


c1607a37-e963-4396-9fbe-732cda4042c5.jpg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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