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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덤벙대는 성격에다 찬찬하지도 못한 내가 양력도 아닌 음력 날짜를 챙긴다는 건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그냥 달력을 보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양력으로 생일을 챙기는 편이다. 나와는 달리 그는 음력으로 생일을 챙겼고, 그래서 해마다 3월이 되면 다음 달쯤 있을 그의 음력 생일을 까먹고 지나가지 않기 위해 틈틈이 날짜를 봐 둬야 했다. 물론 그런데도 깜빡하고 넘어간 날이 몇 번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사흘이나 되던 금쪽같은 연휴를, 뭐 별로 한 일도 없이 이렇게 흘려보내고 이제 5월 초까지는 또 연휴 따위 없이 허덕허덕 달려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포털 사이트의 캘린더에 체크해 둔 다음 달 일정을 살펴봤다. 해마다 12월쯤 되면, 기억해 둬야 할 날짜를 다음 해 달력에 후루루룩 체크해 두는 버릇이 생겼는데 4월 초에는 그의 봉안당에 들르는 날이 3일 정도 체크되어 있었다. 각각 그의 생일과 떠난 날을 양력과 음력으로 두 번씩 체크되어 있을 텐데 체크된 날짜가 3일뿐이라 한참이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또 뭘 빼먹었나. 음력까지 뒤져가며 다시 체크를 해 보니 올해 그의 제삿날은 그의 양력 생일과 겹쳐서 봉안당에 가는 날이 3일밖에 체크되어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안 그래도 요즘 이리저리 정신없는데 나흘이나 오지 말라고 이러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것조차 참 그 사람 다워서 내심 피식 웃고 말았다. 올해 탈상이라고 하루 봐주는 건가 싶기도 했다.
난 이미 두 번의 그의 제사를 그냥 봉안당에서 차려주는 제사상으로, 몸만 가서 참 편리하게 지내고 왔다. 원래라면 집에서 이것저것 음식이라도 만들어서 하는 게 맞겠지만 워낙에 그럴 뒷손도 주변머리도 없고, 차도 없는 터에 버스까지 갈아타가며 가야 하는 봉안당까지 음식을 해다 나를 엄두도 안 나서, 그냥 이 정도로 대충 봐달라는 핑계를 대고 그렇게 하고 있다. 올해도 별로 다르진 않겠지. 이미 두 번이나 해봤는데도 제주 노릇은 언제나 어색하고 어설퍼서 아마 올해도 제실 안에 마련된 안내문을 따라 더듬더듬, 향부터 켜는지 술부터 올리는지 절은 몇 번 하는지 더듬더듬 따라 하며 제사를 지낼 것이다. 내년에도, 내후년도 비슷하겠지. 워낙 외롭게 살다 간 사람이라 나 외에 제사상에 고개를 조아릴 사람 하나 없는 것이 영 짠하고 안타깝긴 하다.
그의 양력 제삿날과 음력 제삿날이 다시 겹치는 건 언제쯤일까. 어디서 주워들은 바로는 음력날짜와 양력 날짜가 다시 겹치는 주기는 대충 19년 정도라고 하니 2041년 정도가 아닐까. 그때쯤이면 내 나이가 환갑이 훨씬 넘은 후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때가 되어도 그와 함께 보낸 시간보다 그 없이 혼자 지낸 시간이 3, 4년 정도 짧아서, 언젠가 썼던 '농도 50%'에는 미치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 세월을 같이 보내 놓고 뒤도 안 돌아보고 먼저 내빼다니. 참 나쁜 사람이다.